“현대자동차가 5년 뒤에도 글로벌시장에서 지금의 지위를 이어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듭니다. IMF 사태 이후 18년 만에 가장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고 봅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현대차 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산업부뿐 아니라 한국은행의 한 간부도 “5년 뒤 현대차가 무너졌을 때 국내 경제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현대·기아차(000270)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는 인식이 민간뿐 아니라 정부 사이드까지 퍼지고 있다. 그만큼 현대·기아차의 위기 상황이 깊고 넓어 자칫 국내 제조업 근간인 자동차 산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과거와 달리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시대에는 한 번의 위기가 즉각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관심과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퍼펙트 스톰 몰려오는 현대차=현대차는 얼마나 어려운 상황일까.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러 악재가 동시에 발생하는 ‘퍼펙트 스톰’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내수 부진 △중국·미국 판매급감 △기초 선행 연구개발(R&D) 능력 부족 △엄격해지는 세계 환경 규제 △한국식 강성노조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6대 악재가 동시에 휘몰아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차는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51개 계열사 임원 1,000여명이 급여의 10%를 삭감하고 과장급 이상 간부 직원 임금을 8년 만에 동결했다. 미래차 경쟁이 한창인 이때 올 상반기 연구개발(R&D) 비용은 6년 만에 10% 이상 줄였다. 지난여름 신입사원 연수에서 매년 지급하던 10만원 전후의 단체복을 없앤 것 역시 현대차가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매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선임위원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으로 중국 판매가 급감하면서 문제가 표면화됐지만 이미 내부적으로 곪을 만큼 곪아 있는 상황”이라며 “더 큰 문제는 어느 하나 간단하지 않아 단기간에 해결이 쉽지 않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의 가장 큰 문제는 차가 안 팔린다는 점이다. 국내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 등 해외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사드 여파로 중국 판매량은 올해 8월까지(40만7,285대) 지난해 대비 39.6% 급감했다. 연 30만대를 생산하는 공장 2곳을 멈춰 세워도 될 정도다. 글로벌 판매는 지난해보다 7% 이상 줄었다. 상반기 영업이익은 2조5,952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16.3% 급감했고 영업이익률은 올 상반기 5.4%로 2011년(10.3%) 대비 반토막났다. 기아차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양사의 올 판매 목표인 813만대는커녕 700만대 달성도 힘들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반복되는 파업에 높아진 인건비로 경쟁력 실종=현대·기아차의 판매 급감은 특유의 ‘가성비’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본의 글로벌 자동차산업 전문 조사회사 포인(Fourin)은 올 7월 ‘현대차 2025 전략 보고서’에서 “재무 부서가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차 값을 너무 높였고 이 때문에 국내외 시장에서 고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현대차 가격은 껑충 뛰었다. 국내에서 현대차 쏘나타 가격은 일본 도요타 캠리나 닛산 알티마와 별반 차이가 없다. 전문가들은 가격 인상의 근본적 이유가 높은 인건비라고 진단했다. 매년 반복되는 노조 파업과 무리한 임금 인상 요구가 원가 인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5년 말 기준 국내 완성차 업체 5곳의 근로자 1인당 연봉은 9,313만원으로 도요타(7,961만원), 폭스바겐(7,841만원)을 훨씬 웃돈다. 500대 기업의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평균이 5.9%인데 자동차업종은 10.2%다. 하지만 생산성은 경쟁사에 한참 못 미친다. 차량 1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도요타가 24.1시간, GM이 23.4시간인데 반해 한국은 26.4시간이다.
이렇다 보니 미국 시장에서는 일본차에 앞서던 가격 경쟁력이 상실되고 글로벌에서는 중국과 일본 및 유럽차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현대차가 수익성 좋은 고급차 시장 공략을 위해 제네시스 브랜드를 론칭하고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조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해답이 없는 상황이다.
현대·기아차의 위기는 수직계열화로 묶여 있는 현대차그룹 전체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2·3차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경제적 피해가 어느 정도 미칠지 예상하기 힘들다. 김용근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30년 전에 맞춰져 있는 노조에 대한 과도한 보호가 한국 제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근본 원인”이라며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노동법 등 노조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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