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각종 비리가 불거진 면세점에 대한 제도 개선에 착수한 가운데 관심을 모았던 ‘신고제’ 도입은 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 심사 없이 자유롭게 면세점 사업을 할 수 있게 하면 득보다 실이 크다는 우려에서다. 대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범부처 차원의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28일 기획재정부와 관세청, 면세점 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9월 발표할 예정인 면세점 제도 개선 방안에 신고제 전환은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현행 특별허가제를 유지키로 한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특허제에서 신고제로의 전환은 너무 급격한 변화인데다 여러 부작용이 예상돼 당장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며 “신고제 전환 문제는 심층 연구용역을 실시하는 등 장기 과제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 하반기에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다.
정부가 신고제 도입을 시기상조로 보는 것은 세 가지 이유였다. 먼저 면세점을 운영할 역량이 안 되는 업체까지 대거 시장에 들어오면 서비스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특히 짝퉁 제품, 밀수 등 사례가 한두 차례만 나와도 세계 시장점유율 1위인 한국 면세점의 위상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세계적으로 면세점 선정 방식이 신고제인 경우는 거의 없는 점도 고려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관광산업 발전을 위한 면세점 제도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싱가포르 등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가 정부 허가제로 면세점 사업자를 선정하고 있다. 여기에다 면세점 업계에서조차 최근 신고제 도입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내온 것이 결정적이었다. 면세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24일 면세점 제도 개선 관련 정부가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이 유보 또는 반대 입장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신고제가 되면 당장은 많은 기업이 면세점을 열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막대한 자본을 가진 대기업의 독점이 더 심해진다는 이유에서다. 그간 업계에서 신고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제도 개선을 앞두고 면밀한 검토를 거친 결과 득이 될 게 없다는 결론을 내린 기업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특허제를 유지하되 심사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범부처 심사위원회를 꾸려 면세점 사업자를 심사하는 방안이 대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은 관세청 단독으로 심사를 해 ‘깜깜이 심사’라는 지적이 있는데 여러 부처가 공동으로 심사하면 공정성과 투명성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위원회에 참여할 기관으로는 기재부·산업통상자원부·공정거래위원회 등이 거론된다. 관세청 단독 심사를 유지하더라도 심사에 참여하는 민간 위원 명단을 대중에 공개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신고제 전환은 어렵다는 결론이 났지만 범부처 심사위원회 구성 등 그 외의 대안은 어떤 것이든 수용 가능하다”며 “합리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면세점 심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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