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보유 지분 일부 매각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보기술(IT),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이 창업자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요청한 ‘동일인(총수) 없는 대기업’ 지정의 근거 마련을 위한 첫 번째 시도로 해석하고 앞으로 다각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창업자는 22일 장 마감 후 네이버 지분 0.3%(11만주·약 860억원)를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형태를 통해 매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당 매각가는 이날 종가인 76만7,000원에서 2~3%가량을 할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네이버의 장 종료 후 대량 매매량은 11만2,000주로 나타나는데 이는 이 창업자가 전날 수요예측으로 시장에 처음 내놓은 물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대부분 외국인이 이 창업자의 지분 매각 물량을 떠안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형적으로는 국민연금이 네이버 지분 10.6%를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만큼 실질적으로는 4.64%의 지분을 보유한 이 창업자가 사실상의 총수라고 본다. 이 창업자가 8년2개월 만에 보유 지분 매각에 나선 것은 공시대상기업집단(준대기업집단) 지정을 앞두고 시장에 메시지를 주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다. 공정위에서 개인으로서는 네이버에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창업자를 기업집단의 총수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보유 주식을 줄여 영향력을 낮출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이 창업자는 지난 14일 공정위를 방문해 “네이버를 주인 없는 기업”이라면서 동일인을 본인이 아니라 ‘네이버 법인’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창업자가 총수 지정을 거부하면서 공정위와 국내 정보기술(IT), 금융투자 업계는 그가 어떤 실질적인 조처를 통해 네이버의 ‘오너’가 아니라는 점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블록딜을 통한 지분 매각은 이 창업자가 대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첫 번째 행보다. 이 창업자의 보유 지분 매각은 2009년 6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이 창업자는 블록딜을 통해 지분 0.47%를 팔면서 5% 공시 의무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개인 또는 기관투자가가 특정 법인의 지분을 5% 이상 갖고 있으면 정기적으로 주식 보유·변동 현황을 공시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문제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 창업자를 네이버의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문제는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유일한 기준으로 두고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점이다. 비록 이 창업자의 보유 지분이 낮더라도 네이버의 사업 전략이나 인사 등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동일인으로 지정하겠다는 의미다.
아울러 금융투자 업계 일각에서 네이버의 자사주가 많다는 이유로 이 창업자의 지분 매각 시도가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는 점도 변수다. 이 창업자의 지분은 4.64%로 낮지만 국민연금공단(10.61%)과 미래에셋대우(006800)(1.71%), 자사주(10.89%) 등 그에게 우호적인 투자가를 포함하면 27.85%다. 일반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현행 상법에 따르면 법인이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로 재편될 경우 의결권이 살아난다.
이런 이유로 이 창업자가 총수로 지정되지 않으려면 이사회 구성원(사내이사)에서 빠지거나 글로벌투자책임자(GIO)라는 보직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안으로 꼽힌다. 이는 네이버에서 창업자와 대주주라는 이름만 유지하고 사실상 경영 활동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3월 네이버 이사회 의장직을 외부 인사(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에 넘기면서도 GIO라는 보직을 만들어 직접 유럽과 북미·동남아시아 지역을 오가며 글로벌 신사업 발굴을 위해 뛰고 있는 이 창업자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또 이 창업자가 “일본 사업이 실패했으면 나도 잘렸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네이버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4조원 이상의 매출액을 달성했고 올해 4~6월에도 분기 단위로는 최대 실적(1조1,296억원)을 냈다. 네이버 이사회와 투자자가 이 창업자를 경영에서 당장 배제할 명분이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더 많은 성과를 내주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이 창업자는 앞으로 네이버 지배 의지가 없다는 추가 신호를 내면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측은 “이 창업자의 개인 지분 매각과 관련해 회사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면서도 “기존 재벌 대기업과 다른 총수 없는 기업으로 지정되기 위해 관계 당국을 설득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민구·임세원기자 mingu@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