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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진단]文정부 개혁, 천천히...전선 넓히지 마라

취임첫해 기대치 높여 놓으면 나머지 4년 국정 운영 힘들어

전선 전방위 확대로 개혁무산...참여정부 뼈아픈 경험 되새겨야

문재인 대통령이 5·18 기념식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의 반응은 뜨거웠다. “눈물이 났다” “정말 가슴이 뜨거워졌다” “계속 이렇게만 해주세요” “역시 우리의 대통령” 등.

취임 10일이 채 안 됐는데도 대통령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문 대통령이 입었던 등산복이 다시 생산되는가 하면 저술한 책, 마시는 커피, 착용했던 군복 등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심지어 문 대통령에 대한 인기는 중국에까지 퍼져 ‘아이스크림을 들고 웃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유도복 차림의 문재인 대통령’ 등의 사진이 중국 최대 SNS인 ‘웨이보’에 게재될 정도다. 대통령 국정 지지도 역시 75%에 이르고 이런 추세라면 머잖아 80%도 돌파할 기세다.

가히 ‘문재인 신드롬’이 일고 있는데, 이유는 뭘까. 간단했다. 예상 보더 더 큰 폭의 탕평인사부터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서는 탈권위, 최측근들의 백의종군 선언, 북한 도발에 대한 엄중하면서도 신속한 대응, 멈췄던 4강 외교 복원 등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 대통령이 그저 대통령의 역할에 충실한 결과다. 더욱이 “5·18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라”와 같은 하루에 하나꼴로 공개되고 있는 대통령 업무지시를 두고도 “잘못된 것만 콕 찍어 해결하고 있다”는 반응이 많다. 준비된 대통령답다는 것이다.

“사인해 주세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서울 양천구 은정초등학교에서 열린 ‘미세먼지 바로 알기 교실’ 행사를 마친 뒤 학교를 떠날 때 학생들이 문 대통령에게 사인공세를 펴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문 대통령이 지난 9일간 쉼 없이 달린 행보를 두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네 가지 이유에서다. △너무 서두른다 △전선이 넓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다 △반대세력 자극으로 역공의 빌미를 제공한다 등이다. 출발부터 발걸음이 꼬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꼭 성공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큰 정책을 정권 출범 며칠도 안 돼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고 꺼낸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지시 1호에 포함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우선 꼽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는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다. 합의가 쉽지 않다. 노동계와 사용자, 그리고 관련 부처 등과 충분한 조율을 거친다고 해도 실행과정에서 탈이 난다. 전직 경제부처 고위관계자는 “금융실명제처럼 충분한 검토와 준비를 거쳐 국민에게 툭 공개한 뒤 실행할 사안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데, 정권 초기라서 그런지 공개가 앞서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미세먼지 대책도 마찬가지다. 미세먼지 발생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도 없이 국민공약 1호라는 이유로 노후 화력발전소 일시중지 대책부터 발표했다. 청와대 발표대로라면 노후화력 10기를 정지해도 미세먼지 절감은 1~2%에 불과하다. 화력발전소를 건설 중인 민간기업들의 혼란은 커졌고 정부 역시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는 이유로 추가 대책을 미룬 실정이다. 민감한 정책의 발표가 앞서다 보니 오히려 역공의 빌미만 준 셈이 됐다.



발표가 앞서면 전선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정권에서 장관을 지냈던 한 인사는 “큰 개혁은 하나만 하기도 쉽지 않다”면서 “전선을 확대하는 순간 개혁 전반은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초기 검찰부터 언론·재벌개혁에 이르기까지 전선을 넓히면서 결국 모든 개혁이 무산된 것을 되새겨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검찰개혁은 돈 봉투 만찬에 대한 감찰 지시로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지금은 그것 하나에 집중하기도 버거운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타깃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너무 앞장선다는 지적도 있다. 자칫 퇴로 설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지금은 5년이라는 국정운영 시간이 있다. 대통령은 굵직한 사안에 대해 마지막으로 전면에 나서 정리하는 게 낫다. 이전 정부의 한 전직 차관은 “국민 다수가 성공한 개혁을 원하고 있다”면서 “모든 사안에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지 않아야 앞으로 무수한 반발·공격을 최소화하며 이끌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통령이 업무지시를 통해 이슈를 선점해가자 야당은 벌써 반발하고 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중진 의원 간담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주 사용하는 행정명령을 (문 대통령이) 흉내 내는 듯하다”면서 “그러나 헌법에 근거가 명확히 규정된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과 달리 인기영합적이고 보여주기식 문 대통령의 업무지시가 과연 정상적 행정절차인지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는 여소야대다. 원내 야당이 3곳이나 된다. 협치가 없으면 개혁입법을 통과시키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고 통과도 장담할 수 없다. 대통령과 여당의 의회정치가 치밀하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 이유다.

사정 대상과 선진화 대상을 구분할 필요도 있다. 재벌개혁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업들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특검수사와 국회의 국정조사로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 와중에 다시 사정의 칼날이 그들의 목을 겨눌까 두려워한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사정 측면에서 개혁이 아니라 한국 경제질서를 선진화하는 차원의 차분하고 긴 호흡의 개혁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실패한 대통령뿐이었던 한국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절망은 상상 이상이다. 오죽하면 많은 이들이 “이민을 가고 싶다”고 했을까. 탄핵과 민주적 절차를 밟아 새롭게 등장한 새 정부에 대한 기대치는 그래서 더 높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뒀던 미국이 참으로 부러웠는데 이제는 미국이 한국을 부러워할 것”이라는 국민들의 기대가 이번에는 꼭 충족되기를 기대한다. /이철균 경제부장 fusionc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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