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여전히 투자처를 찾지 못한 개인 자금들은 은행 초단기 상품에 잠겨 있다. ‘회전예금’으로도 불리는 변동금리 예금 상품이 대표적이다. 회전예금은 1년 이상 고정금리로 예금을 묶어놓는 상품과는 달리 1개월·3개월·6개월 등 고객이 지정한 주기마다 금리를 연동해 지급한다. 회전 주기를 3개월로 선택하면 1년 동안 금리가 총 4번 바뀌는 식이다. 금리 상승기에 0.1%포인트라도 더 금리를 얻을 수 있고 언제든지 해지가 가능해 돈을 임시로 ‘파킹’하는 데는 안성맞춤인 셈이다. 안정적이고 적절한 투자처를 찾으면 바로 돈을 빼 투자할 수 있는 일종의 ‘스탠바이 자금’인 것이다.
실제 회전예금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찾는 고객이 없어 잊혀진 상품이었다. 그러다 불확실성에 갈 곳 없는 돈들이 초단기 금리 상품에 몰리는데다 금리 인상기까지 겹치면서 다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회전예금은 만기에 관계없이 회전 단위로 해지가 가능해 단기 자금 운용에 유리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증권사 상품 중 머니마켓펀드(MMF)·어음관리계좌(CMA) 등이 시장 금리를 반영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닌 것과는 달리 회전예금은 이자를 포함해 5,000만원까지 예금자 보호가 되기 때문에 은행에서 초단기 상품을 찾는 고객들에게 최적의 상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초단기로 투자하면서도 바로 유동화할 수 있는 매력 때문에 상품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초 출시한 우리은행의 ‘위비 슈퍼 주거래 패키지Ⅰ’는 은행 거래실적을 반영한 높은 금리우대 혜택과 금리 상승기에 적합한 시장금리 연동형 상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한 달여 만에 판매한도 2조원을 조기 소진했다. 예금 상품 2조원 완판은 저금리 장기화 기조 속에서 이례적인 현상이다. 우리은행은 ‘위비 슈퍼 주거래 패키지’ 조기 완판에 따라 주거래 고객을 우대하는 ‘위비 슈퍼 주거래 패키지Ⅱ’를 지난달 7일 다시 출시했다. 조현수 우리은행 WM자문센터 컨설팅팀장은 “투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정적인 투자를 원하는 은행 고객들도 만기가 짧은 상품에 더욱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저금리에 약간의 금리우대도 매력이지만 바로 유동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객들이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투자 패턴에도 초단기 투자 흐름이 반영되고 있다. 금 투자의 경우 실물을 선호하는 투자 특성상 실물로 거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최근에는 골드뱅킹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말 그대로 금통장인 골드뱅킹은 실물 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일정액을 통장에 넣으면 은행이 국제시세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에 맞춰 해당 금액만큼의 금을 계좌에 넣어주는 방식이다. 은행에서 실물 금을 사려면 수수료를 내고 또 사고파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반면 골드뱅킹은 실물을 만질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금시세에 따라 바로바로 환금이 가능하다는 게 매력이다. 실물 금 대비 환금성이 훨씬 높은 상품인 셈이다. 게다가 오랜 법적 공방을 거쳐 골드뱅킹에서 발생한 이익은 소득세법에서 열거한 소득에 포함되지 않아 비과세가 맞다는 판단이 내려지며 올해 초부터 골드뱅킹은 다시 비과세로 된 것과 금 실물 제작 비용이 빠져 실물 금 매매보다 수수료가 훨씬 저렴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상협 신한은행 PWM 분당센터 팀장은 “금 투자자들의 대부분은 금 실물을 갖는 것을 선호해 골드뱅킹에 대한 수요는 많지 않았지만 최근 초단기 투자가 각광받으면서 골드뱅킹에 대한 문의도 배 이상 늘었다”면서 “최근 투자자들은 실물에서 오는 안도감보다는 환금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여유 자금을 굴려야 하는데 아직까지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환금성이 강한 단기상품에 집중적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은행권 수시입출금 예금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410조원에 달할 정도다. 이 자금은 언제든지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과 같이 안정적인 투자처가 확인되면 바로 대규모로 이동이 가능하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선 이후 대내외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걷히고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 잡혀가면 단기상품에 몰려 있던 투자자금이 일시에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아 나설 것”이라며 “그전까지는 계속해서 단기상품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보리·조권형기자 bori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