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다시 날아오르고 있다. 전자·디스플레이·화학 등 ‘LG 3총사’가 모두 실적 신기록을 쓴 가운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피해가 우려됐던 LG생활건강마저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주식시장에서는 LG그룹주의 상승폭이 크고 재계에서는 LG의 전성기가 다시 오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레 눈길이 쏠리는 곳은 최고경영자(CEO)들이다. 전자·디스플레이·화학·생활건강을 이끄는 4명의 LG 부회장들은 각자의 차별화된 리더십으로 주력 계열사의 도약을 이끌고 있다. 구본무 회장과 구본준 부회장이 이끄는 지주회사와 주요 전문경영인들이 이끄는 계열사 간의 시너지가 올해 제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다.
◇야전 사령관 조성진…LG전자에 1등 DNA 이식=“지금요? 아마 스마트폰을 분해하고 계실 겁니다.” LG전자 직원들에게 조성진 부회장의 동향을 물을 때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우스갯소리지만 그만큼 조 부회장의 스타일을 잘 나타내주는 말이기도 하다.
현장 전문가, 야전 사령관 등의 수식어가 단골로 붙는 조 부회장은 지난해 LG전자 1인 CEO에 오르며 이 회사의 체질을 바꾸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 부진 이후 분위기가 침체했던 LG전자는 올 1·4분기 9,215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특히 냉장고·세탁기 등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와 TV가 주력인 HE사업본부의 성과가 눈부시다. 이는 ‘세탁기 신화’ 조 부회장의 전공 분야기도 하다. LG전자 H&A사업본부는 1·4분기 사상 처음으로 두자릿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TV는 명품 ‘시그니처’를 전면에 내세우며 북미와 유럽 시장을 홀리고 있다. 조 부회장은 ‘1등 DNA’를 스마트폰을 만드는 MC사업본부에도 이식해 LG 스마트폰의 부활을 주도할 계획이다.
◇통 큰 용장 한상범…대형 OLED 전성시대 열다=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선제적 투자’의 달인으로 꼽힌다. 지난 2012년 취임한 직후 한 부회장이 결단한 ‘대형 OLED TV 시장 진출’은 지금의 LG 디스플레이 실적을 만든 1등 공신이다.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한 디스플레이 업종에서 CEO의 결단은 회사의 명운을 바꾼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LG디스플레이는 전 세계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을 독점했고 프리미엄 TV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강력한 발판을 마련했다.
LG디스플레이는 올 1·4분기 영업이익 1조3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 LG 계열사 중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긴 유일한 곳이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대형 OLED 생산량을 지난해의 2배 수준으로 늘려 시장 장악력을 확대하는 한편 삼성이 독점한 중소형 OLED 시장에도 본격적인 투자 확대에 나선다. 과감한 투자 결단력과 함께 직원들을 아우르는 형님 리더십도 한 부회장의 장점으로 꼽힌다.
◇소통의 달인 박진수…R&D로 미래 열었다=올해로 41년째 LG화학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진수 부회장은 공장에서만 10년을 보냈다. 현장과 본사를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속속들이 모르는 것이 없다. LG화학 관계자는 “지금도 공장에 가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수백명의 직원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눌 정도로 소통에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LG화학이 바스프나 다우케미칼 등 경쟁 기업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의 비중이 더 높을 정도로 연구개발(R&D)에 회사의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박 부회장의 회사에 대한 애정과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LG화학은 올 1·4분기에 6년 만의 최대치인 7,96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전통적으로 회사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온 기초소재 부문의 실적이 크게 개선됐고 정보전자소재 부문도 디스플레이 시장 호황에 힘입어 흑자 전환했다. 배터리 사업 부문과 해수담수화 시설의 핵심 부품인 RO필터 등 수처리 사업의 성장은 박 부회장이 공들인 R&D의 결실이다.
◇포트폴리오의 달인 차석용…사드 위기 극복=12년째 LG생활건강을 이끌어온 차석용 부회장은 고비 때마다 과감한 인수합병(M&A)을 시도하며 기업의 체질을 강화시킨 통찰력 강한 승부사로 통한다. 최근 사드에 따른 중국의 보복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4분기 양호한 실적을 달성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유연근무제를 사내에 정착시켜 효율성을 극대화했고 M&A로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강화해 시장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라인업을 갖춰 LG생건을 위기에도 끄떡없는 체질로 만들어 회사 규모를 10년간 30배 이상 키워냈다.
/윤홍우·박성호·심희정기자 seoulbir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