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과 케이뱅크의 상호 지분투자 제안에 KT는 일단 부정적이다. 이미 케이뱅크 운영이 시작한 만큼 비슷한 업종(은행업 지분투자)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더 급한 곳은 우리은행보다 KT다.
케이뱅크는 출범 한 달 만에 예금자와 대출자가 몰리면서 올해 여·수신 목표의 절반을 넘었다. 수신액은 2,848억원, 대출은 1,865억원으로 올해 연간 목표치의 절반 정도를 20여일 만에 채운 셈이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올해 목표한 수신 규모 5,000억원의 절반을 넘는 2,848억원이 소진된데다 대출도 빠르게 늘고 있어 연말 이전에 자본 확충을 하지 않으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기준에 미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케이뱅크는 자본 2,500억원으로 시작했지만 이미 아이디 시스템 개발과 직원 인건비 등 관리비에만 878억원을 소진했다. 현 상태라면 추가 대출이 불가능해 아예 은행업 자체를 못할 수 있다. 그나마 2,500억원을 증자해도 3~4년간은 적자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케이뱅크는 예상하고 있다. 일반 시중은행은 자본 확충을 위해 후순위채를 발행하는 등 유상증자 이외에도 방법이 있지만 신생 은행인 케이뱅크는 후순위채를 발행하기 쉽지 않다. 케이뱅크의 한 관계자는 “유상증자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케이뱅크는 은산 분리법 때문에 산업자본인 대주주인 KT가 직접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은산 분리법은 산업자본이 은행의 의결권을 가진 지분 10% 이상 갖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미 8%의 지분을 가진 KT는 현행법에서는 유상증자에 200억원만 투입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가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대선을 앞두고 정국의 주도권을 쥔 더불어민주당은 인터넷은행만 산업자본이 34%까지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특례법을 2년 후 적용하자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당장 자본 확충이 급한 케이뱅크에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다. 이 밖에 케이뱅크와 시너지를 노리고 투자한 나머지 주주들의 입장도 유상증자에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영화에 급한 우리은행도 KT가 필요하다. 잔여 지분의 해외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은행은 연초 대비 상승한 주가가 지분매각에 짐이 되고 있다. 우리은행 주가는 연초 1만2,000원대에서 1만5,000원으로 오르면서 현 시가총액(10조1,062억원)만 따지면 지분 가격이 2조1,000억원을 넘을 정도로 비싸졌다. 과거 지분인수에 적극적이던 중동은 유가 하락으로, 미국이나 유럽의 대형 사모펀드는 한국 은행업 전망이 밝지 않다는 이유로 인수에 적극적이지 않다. 정부에서는 주가가 1만4,300원 이상일 때 팔아야 공적자금을 제대로 회수하는 것이어서 어느 때보다 매각 의지가 강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공적자금 회수 수준을 감안해 기업가치 상승의 이익을 획득할 수 있는 주가 수준에 도달한 후 추진하겠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지난해 우리은행 지분매각은 정부가 매각 성사 자체를 위해 헐값 논란을 불사했다. 남은 지분만큼은 제값을 받고 팔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고 이런 정부의 입장에 맞춰 가장 적합한 매수자가 KT로 꼽히고 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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