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일원동 거주자 정모(42)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으로 미세먼지 농도부터 확인한다.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으로 뜨면 그날 바깥활동은 일절 하지 않는다. 집에는 공기청정기 2대를 풀가동 중이고 창문에 차량용 미세먼지 필터까지 달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나친 게 아니냐”는 주변의 지적이 있었지만 올 들어서는 오히려 미세먼지 관리 노하우를 알려달라는 이들이 늘었다. 정씨는 초등학생인 아이가 학교나 학원에 가면 반드시 차로 데려다주고 보행거리를 최소화해 바깥 공기를 최대한 적게 마시게 한다. 정씨는 “호흡기가 약한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다”며 “미세먼지가 더 심해지면 정말 이민까지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회원 수가 4만명에 달하는 네이버 카페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미대촉)’는 4월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차 집회를 연다. ‘미세먼지로부터 모두를 지킵시다’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집회에서 초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알리고 대선주자들에게 미세먼지 대책 마련을 요구할 계획이다. 집회 공지 글에는 이미 600명 넘는 회원들이 참석 희망 댓글을 달았다. 미대촉 관계자는 “중국발 미세먼지로 우리 국민들과 아이들이 병들어가고 있다”며 “미세먼지 문제도 우리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움직이면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미세먼지 공포가 우리의 삶을 뒤흔들고 있다. 뿌연 하늘 아래 전 국민이 창문을 걸어잠그고 맑은 공기 찾기에 혈안이 됐다. “체육 활동은 미친 짓”이라는 비난이 잇따르면서 학교 운동장과 단지 내 놀이터 어느 곳에서도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찾기 힘들어졌다. 청정지역으로 손꼽히는 강원도 지역 등산객조차 마스크를 쓰고 산에 오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비인후과는 밀려드는 호흡기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그만큼 미세먼지가 심각해져서다. 미세먼지주의보는 올 들어 85차례 내려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배 수준이다. 3월 서울의 미세먼지농도는 평균 38로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치인 25를 만족시키는 날은 7일에 그쳤다. 지난해 단 하루도 없었던 초미세먼지주의보도 올해 세 번째 발령됐다.
미세먼지는 대선 이슈로도 떠올랐다. 역대 대선 환경공약들은 수질개선·원전폐쇄 등 거시적 수준에 머물렀지만 이제 시민들은 구체적인 ‘생활밀착형’ 대기오염 대책들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1일부터 시민에게 정책제안 문자 메시지를 받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만명 넘게 정책제안을 주셨는데 그 중 2,000여명이 미세먼지 대책을 말씀하셨다”며 미세먼지 환경기준 강화, 한중일 환경협약 체결 등을 약속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등도 일제히 미세먼지 해법을 거론하고 있다.
/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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