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위기 속에서 삼성그룹 운신의 폭은 크게 제한돼 있다. 삼성 쇄신안의 핵심인 미래전략실 해체를 비롯해 조직 내부의 관심이 높은 사장단 및 임원 인사 시기 역시 오리무중이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1심 재판이 마무리되는 5월께까지 삼성의 시계가 완전히 멈출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 삼성은 전 세계에 걸쳐 50만명을 고용하고 있고 외국인 주주를 비롯해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조직이다. 총수 구속을 이유로 모든 핵심 일정을 뒤로 미루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 쇄신안의 경우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이 주목하는 사안이라 어떤 방식으로든 삼성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장단 및 임원 ‘옥중 인사’ 가능성 높아=사장단 및 임원 인사는 조직의 인력 순환과 직결된 문제다. 승진 인사가 적체되면 내부에 적지 않은 혼선이 생긴다. 인사가 늦어지는 것과 관련해 직원들의 동요도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장단 및 임원 인사는 이 부회장의 구속 상태에서도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부회장이 ‘옥중 인사’를 단행할 경우 승진 규모는 최소화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2008년 삼성 특검 당시에도 사장단 인사를 미뤘다. 특검의 최종 수사 결과 발표 후 5월에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시행했고 8개월 후인 2009년 1월에 다시 인사를 했다. 다만 당시에도 대리~부장급 직원 인사는 미루지 않고 2008년 3월에 예정대로 진행했다.
2008년 5월에 실시한 사장단 및 임원 인사는 승진 규모를 최소화했다. 하지만 바로 8개월 후에 실시된 사장단 및 임원 인사에서는 거센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다. 60대 노장들이 대거 물러나고 50대 젊은 피가 사장으로 충원됐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CE부문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 등이 당시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임원 인사 시기는 전적으로 오너의 판단에 달린 문제로 옥중에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전실 기능 축소, 사장단협의체 도입 안 할 듯=이 부회장 재판 대응 등을 위해 당분간 존속하는 미전실 역시 ‘삼성 약속대로’ 단계적인 해체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최순실 청문회’에 나와 미전실 해체를 약속했다.
삼성은 미전실을 해체할 경우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 등 3개 주요 계열사 중심으로 기존 경영지원 조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 구속으로 당장 미전실을 해체하기는 불가능해졌다. 다만 미전실 해체가 이 부회장이 직접 약속한 사항인 만큼 기능의 단계적 축소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략과 법무, 홍보 등 이 부회장 재판 대응을 위한 핵심 기능을 남겨둔 채 인사·재무 등 사업과 관련된 기능들은 주요 계열사에 먼저 이관하는 것이다.
2008년 삼성 특검 때처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중심이 되는 ‘사장단협의체’ 구성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시에는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가운데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을 의장으로 하는 사장단협의체가 구성됐다. 삼성 내부에서는 “사장단협의체는 허울은 좋지만 제 기능을 하기는 힘들다”는 목소리가 있다. 삼성그룹이 전자-바이오-금융의 3각 체제로 이미 나눠진 상황에서 전 계열사 사장이 모여 의사결정을 하는 시스템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외국기업 CEO 영입 밀고 간다…쇄신안도 단계적 실행=미전실 해체와 더불어 삼성 쇄신안의 또 다른 축인 삼성전자 거버넌스 변경은 예정대로 밀고 나갈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29일 발표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통해 3월 정기주총에서 외국기업 CEO 출신 사외이사를 1명 이상 추가 선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반영해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외국기업 CEO 출신 사외이사 영입 작업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삼성의 국내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해서 외국인을 포함해 주주들에게 약속한 쇄신 로드맵을 이행하지 않기는 어렵다”며 “외국기업 CEO 출신 사외이사 영입 등 주주친화정책은 그대로 밀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설립 등 지배구조 개편과 직결된 문제는 장기간 표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국회 상법 개정과도 연결돼 있는 이슈인데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윤홍우·김현진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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