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전 회장은 지난 1966년 삼성 계열사인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당시 한국비료는 사카린 약 55톤을 건축자재라고 속여 밀수하다 부산세관에 적발됐다. 이병철 전 회장은 가까스로 구속을 피했지만 밀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전 회장의 차남 이창희 한국비료 전무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돼 6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하지만 정작 이 전 회장과 공모해 대규모 정치자금을 확보하려 했던 박정희 정부가 한발 물러서며 삼성 측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덮어씌웠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의 경우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로 불구속 기소됐다. 노 전 대통령이 삼성·대우 등의 기업으로부터 불법 비자금을 헌납받는 사건으로 이 회장 및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이 사면받으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 회장은 이후로도 두 차례 굵직한 사건으로 큰 곤욕을 치렀다. 삼성그룹이 1997년 대선 당시 특정 대통령 후보 및 검사들에게 자금을 제공했다는 녹음파일, 이른바 ‘삼성 X파일’이 2005년 공개되면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 2008년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삼성 비자금과 불법적 경영권 승계 사건을 수사할 때 배임·조세 포탈 등의 혐의로 기소됐지만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번에 삼성 경영 3세인 이재용 부회장이 뇌물 혐의로 구속되자 삼성을 비난하는 여론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재계 1위인 삼성이 또다시 ‘국민 기업’으로 존중받겠다던 약속을 저버렸다는 실망 때문이다.
반면 정부와 기업이 더 이상 비자금 등으로 엮이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강력한 권력을 무시할 수 있는 기업이 누가 있겠느냐”며 “애초에 기업이 정부 눈치 없이 자유롭게 사업할 환경이 조성됐다면 정경유착 고리는 진작에 끊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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