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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대도 드론 날리고 어플 만들고...IT로 인생 2막 준비

11일 호서대학원 강의실에서 수강생들이 드론 조작법 설명을 듣고 있다.




11일 오후 2시께 서울시 서초구 호서대학원 5층 강의실 뒤 편. 10분이 채 안 되는 쉬는 시간 내내 40~50대 남성 8명은 20cm가량 너비의 소형 드론이 위태롭게 비행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컨트롤러를 쥔 한 남성이 조종간을 미세하게 움직여 제자리에서 드론이 비행하게 하는 ‘호버링’을 시도했다. 5초 남짓 제자리를 맴돌던 드론은 갑자기 강의실 벽을 향해 돌진하더니 곧 추락했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작은 서툴 었지만 열기는 뜨거웠다. 쉬는 시간 동안 강의실 뒤 편 뿐 아니라 복도에서도 서넛이 무리지어 드론 비행 연습을 하고 있었다. 수업 중에는 질문이 여기저기서 동시에 쏟아져 나와 강사를 당황케 하기도 했다. 이날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은 모두 베이비부머다. 호서대학교 산학협력단이 개설한 강좌인 ‘드론 창업교육’에는 40대 이상만 참여할 수 있다. 30명 정원인 강좌에는 드론 조작 방법부터 작동 원리, 관련 창업 상담까지 포함되어있다.

◇치킨·카페 창업 대신 IT기술 배우러

20~30대 청년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드론 등 신기술을 활용한 창업 시장에 40~50대가 뛰어들고 있다. 장년층이 IT 기술을 배우게 된 배경에는 냉혹한 현실이 있다. 평균 수명은 늘고 은퇴 시기는 앞당겨지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할 필요성은 커졌는데, 별다른 경쟁력 없이는 실업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어졌다.

2014년도에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평균 은퇴 연령은 52.6세다. 그러나 지난 2015년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의 실질적인 은퇴 나이는 72.9세, 여성은 70.4세다. 퇴직 이후에도 먹고 살려면 20여년간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수 은퇴자들이 치킨집이나 카페처럼 생계형 창업에 나서나 3년을 버티는 것도 쉽지 않다. 지난달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음식·숙박업의 생존 기간이 평균 3.1년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날 강의를 받던 박해명(59)씨는 “음식점 같은 자영업은 포화 상태이지 않나. 아무래도 앞으로 경쟁력 있는 기술을 배워야할 것 같아서 드론 강의를 찾게 되었다”고 말했다. 외식 업계에 20년간 종사하다가 퇴사하고 IT 창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김현철 (52)씨는 “프랜차이즈 매장만 7천개 이상 오픈시켜봤는데 폐점률이 정말 높다”며 “명예퇴직이나 고용 불안 때문에 4050세대 창업 수요는 늘고 있는데 성공할 확률이 너무 낮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실질적으로 실업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선 떠오르는 기술을 배워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드론 창업교육’에서 강의를 하는 강기석 경북대 외래교수는 “‘사오정’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40대 초반 직장인들도 퇴사를 많이 하는데, 별다른 기술이 없으면 창업을 해도 오래 못 간다“며 ”장년층이 드론처럼 뜨는 산업의 기술을 배우면 보다 안정적으로 은퇴 이후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성과 사회 경험이 베이비부머 경쟁력



신기술은 베이비부머가 쌓아온 경험, 전문성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낸다. 상당수 IT 창업 준비자들은 이전에 종사했던 분야에서 사업 요소를 찾아내거나 문제 의식을 단초로 창업 준비를 시작했다. 과학 강사로 일하다가 교육과학 어플리케이션(앱) ’위션’을 개발한 김도균(41)대표는 “학생들과 달리 중장년층은 돈 버는 법을 알고 경험도 풍부해서 사업적 요소를 곧잘 찾아낸다”며 “기존에 해 왔던 제조업 분야에 어플이나 IT 관련 플랫폼을 접목시킨다면 플러스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계 서비스 플랫폼을 개발한 박영준(42) 대표도 건축 및 인테리어 분야에 종사했던 경험을 발판 삼았다. 그는 “소비자와 설계 디자이너들이 온라인상에서 편하게 소통하고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전문성과 경험을 베이비부머 세대만의 경쟁력으로 꼽았다. “인테리어 관련 IT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2030세대가 많지만, 실제 인테리어, 건축 분야 전문가가 직접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전문적으로 이 일을 해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연륜과 경력이 4050세대만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조선소에서 오랫동안 측량 업무를 해온 이혜운(54)씨는 자신의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키고자 드론 강좌를 찾았다. 그는 “사람 눈이 닿을 수 없는 곳을 드론으로 측량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강좌를 수강 중”이라고 말했다. 강의를 맡고 있는 상명대학교 전자공학과 이준하 교수는 “장년층이 그간 해왔던 업무와 경험이 드론과 맞닿으면 생산성 높은 창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준비생들, “장년층 대상 IT교육 늘었으면”

베이비부머들은 기술 교육이 ‘도움 된다’면서도 4050세대를 위한 강좌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층에 비해 IT 숙련도가 현저히 낮은 장년층이 기존의 IT 교육 과정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호서대학교에서 드론 강좌를 듣는 임광순(48)씨는 “드론 관련 강의 자체도 찾기 어렵지만 우리 같은 장년층들만 모아놓고 하는 강의는 더 찾기 어렵다”며 아쉬워했다. 디자인 설계서비스를 제공하는 박영준(42) 대표도 마땅한 배움터가 없어 기업 대상 마케팅 수업이나 블로그 포스팅을 찾아 들으며 IT 지식을 쌓았다. 박 대표는 “창업센터나 시니어센터는 사무실 공간을 지원하는 데 집중돼 있어 IT 관련 교육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장년층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IT교육이 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사설 학원가에는 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프로그래밍 과정이 마련되어있지 않다. 상명대학교 전자공학과 이준하 교수는 “베이비부머는 용접 등을 직접 해본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제작 과정은 젊은 세대보다 잘 소화해낸다”면서도, “강의 중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할 때·는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일부 과정에선 맞춤형 지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다은·하정연·김우보 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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