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이미 2%대로 둔화했다고 분석했다. 주요 국제 연구기관이 우리의 잠재성장률을 2%대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IMF는 “한국의 빠른 잠재성장률 하락, 인구 고령화, 서비스업과 노동시장의 낮은 생산성 등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이 장기 저성장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과도한 인프라, 전문 서비스업 규제 완화 △조선·해운업 좀비 기업 청산 △노동개혁 △부동산 규제 강화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최근 IMF는 ‘한국이 직면한 도전-일본의 교훈’ 조사보고서에서 “잠재성장률이 1991년 8%에서 2015년 2.9%로 급격하게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올해의 경우 IMF가 정확한 수치는 밝히지 않았지만 2.7~2.8%로 추정된다. 한은은 2015~2018년 잠재성장률을 3.0~3.2%로 봤고 최근 다시 추정하겠다고 밝혀 2%대 하향을 시사했다. KDI도 2016~2020년 3.0%로 예상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6~2020년 2.7%, LG경제연구원은 2015~2019년 2.5%로 민간에서는 2%대를 제시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상승 등 부작용 없이 경제가 최대한 성장할 수 있는 비율을 말한다.
보고서는 저성장 탈피를 위해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IMF는 “한국의 인프라, 전문 서비스업 규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하다”며 “2025년까지 관련 규제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상위권으로 완화되면 생산성(총요소생산성·TFP)이 매년 0.25%포인트씩 올라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IMF는 2025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2% 내외로 보고 있는데 규제 완화에 성공하면 2%대 이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IMF 분석에 따르면 2013년 현재 전력 시장 정부 규제 지수는 약 3.6포인트로 OECD 상위 3개국 평균(약 1포인트)의 3배가 넘었다. 지수는 0~6포인트까지로 수치가 높을수록 규제가 강하다는 뜻이다. 이 밖에 가스, 철도, 도로, 전문 서비스 부문 규제도 모두 OECD 상위 3개국보다 강했다.
IMF는 ‘좀비 기업’ 정리도 주문했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 부동산 버블이 꺼지며 부실채권이 늘어났고 기업 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40%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대량실업에 따른 사회·정치적 부담으로 2002년에야 본격적인 청산이 이뤄졌다. 좀비 기업은 성장잠재력이 높은 기업·산업으로의 자금 흐름을 가로챘고 결국 전체 경제 성장을 저해했다고 IMF는 분석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GDP 대비 기업 부채가 100%로 일본보다는 낮지만 조선·해운·석유화학 부문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기간제·파견·일일근로자 등) 비중은 2015년 22.3%로 OECD 평균(11.4%)의 2배에 달했다. 보고서는 “일본도 1990년대 초반 20%대였지만 이후 40%대로 올랐다”며 “비정규직은 성과에 대한 보상이 없어 전체 경제 생산성을 갉아먹고 불평등도 확대시켰다”고 분석했다. 한국도 노동개혁을 통해 과도한 비정규직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IMF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강화해 부동산 버블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현재 60%인 DTI가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높다(헐겁다)”며 “점진적으로 30~50%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DTI는 개인의 연간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대출 한도도 낮아진다. 보고서는 “집단대출 등에도 DTI를 적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IMF는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양호해 구조개혁에 따른 충격을 완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한국이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고령화에 따른 내수·투자 둔화가 앞으로 5년간 물가상승률을 0.3%포인트 낮추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므로 디플레이션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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