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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호 씨티증권 대표 “IB세계 마약 같은 매력 있어... 빅딜 땐 대표직을 건다.”

■ CEO & STORY

현대차 오너 글로비스 지분 블록딜 때 ‘지옥서 천당’ 오가

하이마트 매각도 잊지 못할 거래... 결국 ‘정공법’이 해답

고객사 집중 전략과 ‘돌직구 조언’이 12년 장수 CEO 비결

어느 곳보다 공정한 영역이 IB... 열심히 하는 만큼 번다

박장호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대표 /권욱기자




자본시장에서 투자은행(IB)은 기업과 투자자가 돈을 매개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IB를 통해 기업은 자금을 구하고 투자자는 수익을 낸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중간에서 연결해준다는 측면에서 보면 생판 모르는 남녀가 중매인을 통해 ‘소개팅’을 하는 것과 같은 생리다. 중개가 성공하면 사례(돈)를 받지만 실패하면 도리어 욕을 먹을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한 대목이다. 다만 남녀는 소개팅에 성공하지 못해도 또 다른 이성을 찾아 나설 기회가 있지만 기업이 한번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 실패하고 새로운 투자자를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1조원 단위가 오가는 IB 세계에서 실수와 방심은 용납되지 않는다. 실패는 곧 해당 IB의 평판 하락으로 이어지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매장되는 결과를 낳는다. IB 업계의 이직률이 높고 직업 수명이 짧은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냉정하고 잔혹한 IB 세계에서 어느덧 28년째 몸담고 있는 박장호(52·사진)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대표는 “대형 거래(빅딜)에 도전할 때마다 언제든 사표를 던질 각오로 임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씨티증권 대표로 취임한 뒤 12년째 조직을 이끈 그도 최근까지 IB 거래를 진행하면서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일투성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럼에도 IB 세계를 떠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이유를 물으니 박 대표는 “마약 같은 매력이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누가 보기에도 어려운 IB 거래를 새롭게 구조를 바꾸고 예상치 못한 투자자를 끌어들여 성사시켰을 때의 희열과 쾌감이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고 한다. 박 대표는 “고객사와 투자자가 모두 만족하는 거래를 만들어내면 가슴에 훈장을 단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표현했다.

박 대표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2015년 2월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1조1,500억원 규모의 현대글로비스(086280) 보유 지분 13.39%를 시장에 매각한 건을 ‘가슴에 훈장을 단’ 대표적인 IB 거래로 꼽았다. 당시 주관사를 맡은 씨티증권은 불과 한 달 전에 첫 번째 블록딜 시도를 했으나 실패한 뒤 ‘코너’에 몰린 상태였다. 박 대표는 “보안을 최우선으로 여겨 미리 국내 기관투자가 수요예측을 진행하지 않았던 게 오히려 매각 실패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라며 “첫 번째 시도에서 거래를 마무리 짓지 못해 상당한 좌절감을 느꼈다”고 곱씹었다. 국내 주식발행시장(ECM)에서 최강자로 불린 씨티증권이 대형 블록딜에 어려움을 겪자 주관사 자리를 뺏으려는 다른 증권사의 ‘태클’도 잇따랐다.

박장호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대표 /권욱기자


위기의 상황에서 박 대표는 ‘정공법’으로 승부를 걸었다. 박 대표는 씨티그룹 뉴욕 본사와 현대차(005380)그룹에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걸겠으니 다시 한번 거래 주관을 맡겨달라”고 요청했다. 박 대표의 승부수를 통해 주관사 자격을 유지한 씨티증권은 두 번째 시도에서 주당 매매 가격을 낮추고 현대차그룹 총수 일가의 현대글로비스 잔여 보유 지분 보호예수 기간을 180일에서 720일로 늘리는 등 새로운 전략을 짜서 거래를 성사시켰다. 박 대표는 “투자자 모집이 완료됐다는 소식을 듣고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온 기분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씨티증권이 하이마트 매각 자문을 맡아 2012년 롯데그룹(롯데쇼핑(023530))에 경영권 지분을 넘긴 것도 박 대표가 잊을 수 없는 IB 거래 중 하나다. 하이마트의 1대 주주인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과 2대 주주인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이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탓에 매각 측의 이견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하이마트 대주주가 검찰 수사를 받고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오른 점도 변수로 작용했다. 혼란스런 상황에서 매각작업이 1년 가까이 길어졌지만 박 대표는 “여러 조건을 배제하고 오로지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것에 집중하자”며 하이마트 대주주를 끈질기게 만나 설득했다. 결국 국내 대표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에서 롯데쇼핑으로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를 변경하는 우여곡절 끝에 하이마트 매각에 성공했다. 박 대표는 “IB는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아무런 수익을 낼 수 없으므로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몰입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씨티증권이 국내에서 발생하는 굵직굵직한 IB 거래를 따내면서 업계에 뿌리를 내리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게 박 대표라는 점에는 국내 금융권에서 아무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는다. 박 대표는 씨티증권의 성공 비결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씨티증권의 100명 안팎 인력으로는 모든 국내 대기업을 챙길 수 없다는 판단으로 역량을 소수의 고객사에 쏟았다. 기업금융사업 총괄인 원준영 전무와 인수합병(M&A) 자문 책임자인 김석봉 전무가 박 대표의 조력자이자 동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두 번째는 고객사에 대한 뼈 있는 조언이다. 박 대표는 “기업과 투자자가 듣기 싫은 말이라도 ‘돌직구’를 날려야 거래 성사 확률을 올릴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객사가 바라는 구조로만 IB가 자금조달 방안을 짜주는 소극적인 자세로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게 박 대표의 평소 생각이다. 또한 박 대표는 기업·투자자와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신뢰가 쌓이고 새로운 전략을 도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가 지독한 IB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준 곳은 독일계 도이체방크에 인수된 미국계 증권사 뱅커스트러스트(BTC)다. BTC는 1990년대까지 전 세계 파생상품 시장을 주도한 증권사로 꼽힌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과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 김성태 전 대우증권 사장 등 내로라하는 국내 금융권 인사들이 BTC 출신이다. BTC는 군대 같은 조직문화로 ‘거칠게’ 일을 시키고 내부 경쟁도 치열했지만 박 대표는 이곳에서 채찍질을 받으면서도 끝내 10년을 버티면서 IB 사업부 총괄까지 지내고 나왔다. 그는 “BTC에서 일할 때 인간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면서도 “덕분에 기업의 자금조달 전략을 짜는 기법과 주어진 시간 안에 일하는 습관을 빠르게 체득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박 대표가 씨티증권에서 인재를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은 ‘기본’이다. 숫자를 잘 다루고 경제·금융·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도 고객(기업·투자자)을 대하는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냉혹한 IB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박 대표는 “높은 건물을 지을 때 지반을 다지고 핵심 기둥을 잡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층수가 쌓이는 것은 금방이지 않느냐”며 “IB 업계의 특성도 이와 비슷해 기본을 갖춘 인재가 들어오면 금방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IB 세계를 알고 싶어 하거나 입성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를 해달라는 요청에 박 대표는 뜻밖의 진솔한 생각을 꺼내놓았다. “불공정·불평등이 전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IB 업계만큼 개인의 능력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영역이 없습니다. 사람의 배경이나 기술은 IB 업계에서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얼마나 치열하게 기업·투자자와 경제·산업 환경 변화를 공부했는지에 따라 모든 ‘딜’의 결과는 달라집니다. 열심히 뛴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곳이기에 숱한 고생에도 IB 세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박장호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대표는...

△1965년 서울 △1987년 연세대 응용통계·경제학과 졸업 △1989년 미국 워싱턴대 경영학석사(MBA) △1998년 뱅커스트러스트(BTC) 투자은행(IB) 부문 대표 △2004년 살로먼스미스바니 채권발행시장(DCM) 부문 대표 △2005년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총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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