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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 ¦ 구글에 규율을 입히다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6년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초대형 검색엔진업체 구글은 그동안 차기 주력상품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부어 왔다. 이제 구글과 모기업 알파벳의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월가의 베테랑 루스 포럿 Ruth Porat이 나섰다. 과연 그녀는 구글의 ‘스마트 크리에이티브 SMART CREATIVES들’을 제어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영하의 날씨에도 루스 포럿은 취미인 스피닝 (*: 실내자전거를 활용한 운동) 수업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로 위 빙판이 그녀를 가로막았다. 2015년 1월 어느 일요일 아침, 포럿은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 Upper West Side에 위치한 자신의 집 근처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의사들은 왼쪽 견갑골이 부러진 채 응급실에 도착한 그녀를 보자 즉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당시 포럿은 연간 실적발표를 이틀 앞둔 모건 스탠리의 CFO였다. 포럿은 수술 대신 멜빵 붕대를 하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는 이유로 진통제도 거부했다. 그녀는 화요일 아침 실적발표가 시작될 때까지 긴 이틀을 보내야 했다.

실적발표가 끝나자마자 포럿은 차를 몰고 곧장 병원으로 가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불과 며칠 후, 그녀는 다시 미드타운 맨해튼 Midtown Manhattan에 위치한 모건 스탠리 본사로 돌아가 이사회에 발표 결과를 보고했다. 후탐 올라얀 Hutham Olayan(사우디 재벌 올라얀 그룹 Olayan Group의 고위 임원으로 모건 스탠리 이사직을 장기간 역임한 인물)은 이사들의 눈에도 “엄청나게 부풀어 올라 푸르스름하고 시커매진 손”이 보였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하지만 포럿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태연했다. 어깨 통증은 이후 몇 달간 이어졌지만, 포럿은 장거리 이동도 주저하지 않았다. 사고 몇 주 후 그녀는 캘리포니아를 방문했고, 이 때를 계기로 기술업계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어려운 자리로 이직하게 됐다. 창사 30주년이 가까워진 구글의 CFO로 합류해 회사의 변신에 도움을 주기로 한 것이었다.

리더라고 해서 반드시 고통을 잘 참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재무 분야 최고위 경영인으로 커리어를 구축해온 포럿은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불편 모두를 초연하게 견디고 있다. 그녀는 촌각을 다퉜던 금융위기의 스트레스와 맞섰고, 협상 장에선 자존심 센 경영인들 간의 팽팽한 긴장 상황도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는 기술업계 최대 아이디어 공장에 재무관리의 원칙을 적용하며 문화적 충돌을 인내하고 있다. 금융과 기술은 모두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어려운 분야다. 그러나 올해 58세인 그녀는 두 분야 양쪽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지닌 몇 안 되는 여성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포럿의 업무 태도는 카페인에 대한 의존이 일상인 월가의 기준으로 봐도 특출하다. 모건 스탠리의 전 CEO 존 맥 John Mack은 재무적으로 가장 힘든 난제에서 해답을 찾아내는 그녀의 능력이 평균을 가볍게 뛰어넘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엄격한 분석적 태도가 친근함, 따스함과 결합된 포럿의 모습은 ‘이사회의 노련한 외교관’이라 불러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GE의 제프 이멀트 Jeff Immelt CEO는 포럿에 대해 “나쁜 소식을 들고 와도 싫어지지 않는 사람은 루스 뿐”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포럿은 약 30년간 잔뼈가 굵은 금융업을 떠나 다른 업계에 정착했다. 2015년 5월 구글의 CFO로 선임됐다. 정장과 굽 높은 구두 대신 후드 티와 청바지로 갈아입은 그녀는 구글의 기업구조를 개편해 지주회사 알파벳을 만드는 작업에 즉각 착수했다. 또 구글의 수익과 지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검색과 광고 부문, 그리고 문샷 moonshot 프로젝트 (*역주: 실현 가능성이 낮은 독창적 연구 프로젝트) 부문에서 얼마나 많은 이익과 지출이 발생하는 지를 투자자들에게 공개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주주들에게 내보인 성과는 대체로 만족할 만하다. 2015년 7월, 그녀가 지휘한 첫 실적보고 직후 구글의 시장가치는 하루 만에 600억 달러가 상승했는데, 이는 미국 기업 역사상 신기록이었다. 구글(현재는 알파벳) 주가는 포럿이 기준 시간대를 미국 서부로 변경한 이후 40% 이상 성장했다. 알파벳의 회장 에릭 슈미트 Eric Schmidt 는 포럿에 대해 “자회사 신설과 보상 등 기업구조를 대규모로 개편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렇게 멀쩡할 수 없다”며 “그녀는 비범하다”고 칭찬했다.

금융 엔지니어 포럿은 지난해 지주회사 알파벳을 중심으로 한 구글의 구조개편을 이끌었다. 2015년 5월 그녀가 합류한 이후 구글 주가는 40% 이상 상승했다.


하지만 알파벳의 탄생은 장기적 변신의 첫 단계일 뿐이다. 미래를 향한 구글의 노력에서 포럿의 역할은 핵심적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부터 인공지능 개발까지 그간의 여러 인상적인 혁신에도 불구하고, 구글의 매출 약 95%는 여전히 온라인 광고에서 발생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경쟁업체들이 점점 더 경쟁력을 갖추면서 구글이 종국에는 독점적 우위를 잃어버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독립적 기술 애널리스트인 롭 엔덜 Rob Enderle은 “알파벳의 지배가 끝날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에겐 새로운 히트작이 필요하다. ‘그 외의 시도(Other Bets)’라 불리는 광고 외의 사업들 중에서 히트작이 나온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돌파구를 찾아내는 건 포럿의 역할이 아니다. CFO는 혁신가들이 만들어 낸 결과에 의존하는 자리다.

여기에서 갈등 요인이 발생한다. 포럿이 감독을 맡으면서 광고 외 사업 분야들은 매출에 맞는 수준으로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 슈미트와 구글의 두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Larry Page 와 세르게이 브린 Sergey Brin은 모두 이런 규제를 통해 구글이 차기 주력사업을 더욱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일명 ‘스마트 크리에이티브’라 불리는 구글 직원들 중 일부는 재정건전성 추구 때문에 다음 세대의 가장 위대한 혁신이 채 꽃도 피우기도 전에 뿌리를 뽑히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포럿은 최근 한 강연에서 “위대함을 향한 여정에 비용 절감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포럿은 본 기사와 관련해 이 발언에 대한 부연 설명을 제공해 달라는 포춘의 요청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런 원칙에도 불구하고 구글은 예산을 삭감했는데, 최근 중역들이 잇달아 사임하자 이로 인해 회사에 출혈이 발생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포럿과 후드 티 간의 밀월 관계가 끝난 것이다.

사실 실리콘밸리 행은 포럿에겐 고향으로의 귀환이다. 그녀는 영국 태생이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가 스탠퍼드 대학 SLAC 국립 입자가속기 연구소(SLAC National Accelerator Laboratory)로 이직하면서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 주 팰로 앨토 Palo Alto로 이주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고등학교 졸업장조차 없었던 아버지 댄 포럿 Dan Porat 은 40편 이상의 과학 및 공학 관련 논문을 저술하는 등 물리학자로서 성공을 거뒀다. 어머니 프리다 포럿 Frieda Porat 은 심리학자였다. 루스는 가족과 커리어 중 어느 한쪽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을 늘 간직하며 살았다.

수학과 문제 해결에 대한 애착이 포럿을 월가로 이끌었다. 스탠퍼드대와 와튼 Wharton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포럿은 1987년 M&A 담당 주니어 뱅커로 모건 스탠리에 입사했다. 90년대 중반, 그녀는 모건스탠리의 기술은행업 부문을 이끌며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월가가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에 한참 빠져들던 시기였다.

포럿은 당시 모건 스탠리의 영향력 있는 기술주 전문 애널리스트인 매리 미커 Mary Meeker와 긴밀히 협업했다. 미커는 포럿의 친구이자 세 아들의 대모이기도 하다(포럿은 증권전문 법률가 앤서니 패두아노 Anthony Paduano와 1983년 결혼했다). 모건 스탠리 투자은행 부문의 수장이었던 조 퍼렐라 Joe Perella는 당시 포럿에 대해 “기계를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였다고 말했다. 과감한 투자를 옹호하는 기술 애널리스트들과 상대적으로 회의적인 은행 출신 간의 입장이 엇갈리던 이 시기에 투자 결정에 대한 전체적인 합의가 이뤄지도록 지원했다는 뜻이다. 포럿과 미커는 데이터와 아이디어로 무장하고 있었다. 모건 스탠리를 기업공개 주관사로 선정해 달라고 기술기업들을 설득하는 데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녀는 벤처기업들에게 상장 전에 잠시 속도를 늦추고 사업모델의 가치부터 증명하라는 조언을 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인터넷 1.0 시대의 두 거물 : 포럿(오른쪽)은 모건 스탠리 기술은행 부문을 이끌던 1999년, 유명 기술주 애널리스트인 메리 미커를 만났다. 두 사람의 활약 덕분에 모건 스탠리는 기술기업 IPO 시장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


맥은 이후 포럿을 투자은행부문 부회장으로 선임했다. 더 큰 회사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였다. 포럿을 처음 만났을 때 이멀트는 잭 웰치 Jack Welch의 뒤를 이어 GE의 CEO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다. 그는 “은행가들은 우리를 찾아왔을 때 보통 처음 30분 정도는 잭 웰치에 대한 일화부터 말을 꺼낸다. 그렇게 해야 내 기분이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루스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포럿은 일을 실행할 경우 모건 스탠리에 큰 수수료가 돌아감에도 몇몇 계획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혀 이멀트의 신뢰를 얻었다. GE가 보험 부문인 젠워스 Genworth를 분사해 28억 달러 규모의 IPO를 시행했을 때, 포럿은 공모주 가격을 낮출 것을 강력하게 제안했다. 너무 높이 책정됐다가 상장 후 곤두박질칠 위험이 있다는 게 그녀의 의견이었다. 이멀트는 “CEO들은 그런 소리를 듣는 걸 질색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루스 말이 맞았다.”

2006년 포럿은 모건 스탠리의 금융기관 뱅킹 비즈니스 부문을 맡았다. 대형 은행의 자금조달이 주요 업무였다. 그 결과 포럿은 금융위기의 쓰나미가 월가를 정통으로 덮치는 순간, 구조요원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2009년 6월 맥은 행크 폴슨 Hank Paulson 당시 미 재무장관의 전화를 받았다. 폴슨은 당시 파산 위기였던 대형 모기지 업체 페니 메이 Fannie Mae와 프레디 맥 Freddie Mac을 구하기 위한 팀을 만드는 중이었다. 맥은 뛰어난 은행가 두 명인 포럿과 밥 스컬리 Bob Scully를 그 팀에 보냈다. 폴슨은 워싱턴에 도착한 포럿에게 “지금껏 해 본 어느 일보다 더 고되겠지만 그만큼 보람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포럿과 스컬리는 페니 메이와 프레디 맥의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경영권을 연준이 갖는 계획을 작성했다. 폴슨은 이 결정이 모기지 시장의 유동성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장기적 보증”을 제공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페니 메이와 프레디 맥의 임원들은 반발했지만, 만약 그들을 따랐더라면 대침체(Great Recession)는 더욱 악화됐을 공산이 크다. 맥은 “폴슨이 루스를 보내 줘 고맙다고 얼마나 많이 감사를 표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폴슨은 대형 보험업체 AIG를 살리는 일에도 포럿의 힘을 빌렸다. 포럿의 옛 동료에 따르면, 이 무렵 그녀는 밤 늦게 퇴근해 샤워를 하러 가던 중 부엌에서 응원 문구가 적힌 쪽지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엄마랑 다시 있을 수 있도록 얼른 이 일이 끝나게 해줘요’라고 적힌 열한 살짜리 아들의 쪽지였다.

워싱턴에서 쌓은 경험 덕분에 포럿은 2010년 1월 CFO로 승진했다. 이후 모건 스탠리는 금융위기 여파로 수익률이 하락해 그리 좋은 실적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포럿은 재무 상태를 안정화하고 정부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과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찬사를 받았다. 그녀는 분위기를 띄우는 재주도 가지고 있었다. 일례로 직원들이 실적보고서 작성을 위해 야근과 주말 출근에 시달릴 때, 포럿은 팝송을 틀고 직원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2014년 말이 되자 포럿은 변화를 갈망했다. 재무부 부장관(deputy secretary) 후보로 거론됐지만 은행가들을 비난하는 청문회를 견디는 대신 사양하는 쪽을 택했다. 스탠퍼드대의 신탁 관리자이기도 한 그녀는 미 서부지역을 방문하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동료들은 포럿이 아버지가 여전히 살고 있는 팰로 앨토를 그리워했다고 전했다.

맥은 포럿에게 구글과 애플의 수석 고문으로 오랫동안 활동한 빌 캠벨 Bill Campbell과 상의해볼 것을 권유했다. 2015년 2월 어느 토요일, 포럿은 팰로 앨토에 위치한 캠벨의 자택에서 자신의 향후 행보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훗날 캠벨이 포춘에 밝힌 바에 따르면(4월 타계 전에 진행된 인터뷰), 포럿에겐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CFO를 또 하고 싶진 않다는 것이었다. 캠벨은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에게 딱 맞는 자리가 하나 있네. 구글의 CFO는 어떤가?”



포럿은 당시 구글의 CFO 패트릭 피쳇 Patrick Pichette이 퇴임을 앞두고 있었고, 금융위기 때 그녀의 활약이 구글 경영진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포럿은 캠벨에게 흥미로운 제안이라고 답했고, 그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녀가 캠벨의 집을 떠나기가 무섭게 페이지의 비서로부터 미팅 날짜를 잡자는 전화가 왔다. 구글의 내부 논의도 길지 않았다. 캠벨의 집을 방문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포럿은 주식과 보너스를 합해 총 7,000만 달러에 육박하는 이직 제의를 받았다.

금융위기 시절의 월가가 심장 발작 정도였다면, 현재의 구글은 모기에 물린 상처 수준에 불과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공한 경영인에게도 악몽은 찾아오는 법이다. 구글은 한때 업계의 선도자였지만, 현재는 환경 변화를 따라잡는 데 실패한 야후와 노키아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다른 시도’를 통한 혁신이 궁극적으로 성공해야 하는 까닭이다. 투자자들도 구글의 연구가 성과를 낼 것이란 확신을 원하고 있다. 구글이 상장되던 2004년 당시, 페이지와 브린은 주주들의 압박 때문에 장기적 목표를 희생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현재, 구글의 주주가 세계 최고 수준의 다양성을 갖게 되면서 더 이상 “그냥 믿어 달라”고만 말할 수는 없게 되었다.

포럿의 첫 출근 날, 페이지는 지주회사 구조 전환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설명하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 그녀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2015년 8월, 부임 4개월 차였던 포럿과 페이지는 알파벳의 탄생을 발표했다. 구글은 물론, 네스트 Nest (커넥티드 홈 전문 기업)와 구글 파이버 Google Fiber (가정용 광대역 콘텐츠 전문) 등 연구 중심의 소규모 사업들도 대다수가 알파벳의 자회사가 되었다. 알파벳은 ‘구글’과 ‘다른 시도’ 두 부문의 매출 및 이익을 각각 공개하고 있다. 구글 부문은 광고와 함께 클라우드 서비스와 안드로이드를 포함한다. 구글 부문은 올해 2분기 알파벳 전체 매출 215억 달러 중 99.1%를 차지했다. 다른 부문들은 단 0.9%만을 기록했다.

포럿의 대(對)투자자 홍보팀은 월가 애널리스트들에게 설명을 하는 ‘근무시간(office hours)’ 미팅을 15~30분간 갖고 있다. 많은 회사에서 기본으로 인식되는 제도지만, 구글에선 새로운 시도였다. UBS의 인터넷 및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연구 그룹에서 매니징 디렉터를 맡고 있는 에릭 셰리던 Eric Sheridan는 “루스가 우리 팀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알파벳이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포럿은 2015년 10월 51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결정하면서 투자자들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았다.

하지만 새로운 규율에 대한 알파벳 내부의 반응은 설렘이라기보단 긴장에 가깝다. 재무 담당 직원들은 ‘다른 시도’ 부문의 직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각 사업부의 지출과 수익을 차례로 보여 주며, 재무적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선 일정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기업 재무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이런 행위는 구글에선 급진적인 변화다. 프로젝트 관리자 상당수가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구글의 한 직원은 “루스는 살갑고 따뜻한 사람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질문도 단도직입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 동안 구글에선 직설적인 말투가 드물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발언이다.

구글의 전·현직 직원들은 재무적 감독과 더불어 각종 비용절감도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다른 회사들은 이미 수십 년간 겪었던 일이다. 직원들에게 대면회의 대신 화상회의를 권장하는 등 사소한 변화도 있다. 하지만 소식통들은 전략적 차원의 절감도 진행 중이라고 전한다. 예컨대 ‘다른 시도’ 부문은 새로운 직원을 뽑는 게 힘들어졌다. 회사 운영의 독립성 강화도 요구되고 있다. 이들 자회사의 법률자문, 인사, 홍보 등의 기능을 알파벳이 대행하되 서비스는 유료로 진행한다는 조건이 추가됐다(‘다른 시도’ 소속의 한 자회사는 1년간의 홍보 지원에 대한 대가로 50만 달러를 지불했다). 물론 이들 사업부가 개별 기업이었다면 이 비용을 자체 부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알파벳 소속으로선 전례가 없는 제약이었다. 일부에겐 이익보다 혁신을 중시하는 구글의 기업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구글의 경영진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슈미트 회장은 전에 없었던 변화임을 인정하면서도, 알파벳이 유망 분야에 투자할 수 있도록 효율성을 높이는 순기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 동안 클라우드 컴퓨팅과 인공지능 프로젝트 담당 엔지니어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한 것이 한 가지 예이다. 슈미트는 “비용감축은 실재하는 일이고, 꼭 달성해야 하는 올바른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포럿이 지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럿이 오기 전에는 규율이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규율이 진짜 문제일까? 가장 최근 분기에 ‘다른 시도’들은 매출 1억 8,500만 달러에 적자만 무려 8억 9,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알파벳이 같은 분기 70억 달러의 현금 수익을 창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회사가 충분히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애널리스트 엔덜은 “비용절감은 아플 때 처방하는 진통제와 같다. 언젠가는 병의 근본 원인에 대응해야 한다” 고 말했다. 그는 “알파벳의 진짜 문제는 돈을 쓴 연구가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고 덧붙였다.

그 일이 가치가 있든 없든, 알파벳의 개혁으로 일부 임원들은 퇴사를 선택했다. 네스트의 창립자 토니 패델 Tony Fadell은 지난 6월 기술 전문 웹사이트 ‘인포메이션 the Information’에 “이제 모든 분야가 재무적 원칙을 따라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기고하고 얼마 후 회사를 떠났다(그는 알파벳의 고문직은 유지하고 있다). 구글 자율주행차 사업부의 임원 세 명도 8월에 사직서를 냈고, 구글의 벤처 부문 창립자이자 수장인 빌 매리스 Bill Maris도 퇴사를 선택했다. 알파벳의 연구기관인 엑스 X의 경영진이 대폭 교체됐다는 보도도 수 차례 나왔다.

이들이 사표를 냈다는 소식은 팰로 앨토 인근에서 큰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금융위기에 맞서 싸운 경험이 있는 포럿은 소란을 가라앉히는 법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 기업의 내분을 합리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역량도 갖추고 있다: 포럿은 2003년부터 두 번 유방암 판정을 받았고, 현재는 증상이 호전된 상태다. 벤처캐피털 업체 클라이너 퍼킨스 Kleiner Perkins의 파트너로 재직 중인 미커는 “위기관리 과정을 통해 발달된 리더십 재능은 절대 무시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재능 덕분에 포럿의 의견은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는 구글 안팎에서 존중 받고 있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포럿과 슈미트는 유럽 지도자들을 상대로 만찬을 개최했다. 원래는 포럿이 연단에서 슈미트를 소개하고 물러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포럿이 입을 여는 순간, 슈미트는 그녀가 자신보다 더 훌륭한 연사임을 깨달았다. 슈미트는 “(포럿이) 말하는 방식에서 구글에 대한 깊은 이해도를 느낄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슈미트는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곧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냥 입을 닫고 조용히 루스의 말을 경청하자.”



모험적 투자
연구 중심의 실험적인 ’문샷‘ 사업들은 알파벳의 출범과 함께 구글의 핵심 수익 구조에서 근본적으로 분리됐다. ’다른 시도(other bets)‘라 불리는 이 사업들은 현재 재무적 자립도를 높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문샷 사업들의 내용과 현황을 살펴본다.

네스트 NEST의 주력상품은 스마트폰으로 조절하는 온도계, 알람, 카메라 같은 ’스마트 홈‘ 기능들이다. 매출은 발생하고 있지만(2015년 매출은 3억 6,000만 달러로 추정), 제품 개발 속도가 느리다는 점과 타킷 고객층을 설정하는 것을 놓고 내부 갈등이 커지고 있다.

베릴리 VERILY는 알파벳의 생명과학 담당 사업부로, 유전정보 수집 관련 대형 이니셔티브 등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의료 및 제약업체들과의 계약 덕분에 실적은 양호하지만, 인재 유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엑스 (구 명칭 구글 엑스)는 구글의 문샷 아이디어 중 상당수가 잉태된 곳이다. 그 중 하나인 룬 프로젝트 LOON PROJECT(위 사진)는 대형 풍선에 중계기를 매달아 농촌 지역에 인터넷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지출에 제약이 가해지면서 엑스의 신규 고용은 위축됐고, 경영진 교체설이 보도되기도 했다.

파이버 FIBER는 광섬유 통신망을 통해 기가비트급 고속인터넷과 TV 콘텐츠를 제공한다. 당초 목표는 올해까지 가입자 수 500만 명을 달성하는 것이었지만, 현재까지의 실적은 수십만 명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리해고 소식이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자율주행차(SELF-DRIVING CARS) 프로젝트는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시험 운행 단계에 있다. 아직 상용화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자율주행차 팀(엑스 소속)이 현재 자동차 회사들과의 협력을 추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피아트 크라이슬러와 협업 계약을 체결했다.

캘리코 CALICO는 생명공학기업 제넨테크의 CEO 출신 아서 레빈슨이 이끄는 노화방지 연구 중심 사업부다. 인간의 수명을 결정짓는 생물학·유전학적 요인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 구글은 캘리코에 2억 4,000만 달러를 투자했지만, 상업적 전망에 대해선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Leena R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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