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 공식 탈퇴를 선언한 배경에는 LG그룹과 전경련 간 작은 구원(舊怨)이 있었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 1999년 정초. 그해 1월6일 구본무(사진) LG그룹 회장은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만난다. 구 회장은 이 자리에서 당초 예상과 달리 LG반도체를 통째로 내놓겠다고 선언한다.
재계에서는 구 회장의 ‘결단’에 깜짝 놀랐고 구 회장은 당시 회동 직후 비통함을 주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해 4월22일 신라호텔에서 구 회장은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과 빅딜을 발표했다. LG그룹이 현대그룹으로부터 2조6,000억원을 받고 LG반도체를 현대전자로 넘기기로 한 것이다.
LG의 한 관계자는 “당시 반도체 빅딜을 지켜보면서 피눈물을 흘렸다”며 “차세대 사업으로 선정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는데 강제적으로 기업을 넘겨야 했으니 LG그룹 임직원 전체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라고 회고했다.
이 같은 반도체 빅딜의 밑그림을 그린 곳이 바로 전경련이었다.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대기업의 자체 의지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라 정부 지시로 강행됐고 전경련이 핵심 역할을 한 것이다.
정부와 전경련을 중심으로 인위적으로 단행된 반도체 빅딜은 LG그룹과 현대그룹 모두에 ‘저주의 거래’가 됐다. LG그룹은 매각대금 중 5,000억원은 데이콤 등 통신사업 주식으로 받았다. 하지만 데이콤은 ‘속 빈 강정’이었다. 데이콤 정상화에 돈을 쏟아부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결국 LG그룹은 데이콤을 LG텔레콤에 합병시키고 말았다.
LG그룹은 창립 60주년 사사(社史)에서 반도체 빅딜의 ‘흑역사’에 대해 “강압적 분위기에서 반도체 사업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구 회장은 이후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회사 명운이 걸린 M&A를 전경련이 주도했다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가 아니겠는가”라며 “LG그룹과 전경련의 껄끄러운 관계에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귀뜸했다.
/서정명기자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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