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미전실) 폐지를 선언함에 따라 향후 예정된 조직개편과 인사 폭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00여명에 달하는 미전실 인력이 개별 계열사로 원대 복귀할 경우 사장단과 임원을 포함해 계열사별·부서별 인력 대이동이 연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 부회장 등 오너가문-미전실-계열사 사장단 등 3단계로 이어진 경영 시스템에서 핵심축인 미전실이 빠지면서 기존 조직의 기능과 역할 변화, 새로운 조직 신설, 이에 따른 사장단과 임원 인사 이동도 대거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청문회 출석 이후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미전실발(發) ‘헤쳐 모여’ 태풍이 불 수 있다는 위기감과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다.
7일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미전실 해체를 언급한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진정성을 담아 국민들과 약속한 내용이어서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바로 착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직접 조직쇄신 집도=이 부회장은 6일 청문회 자리에서 “체제를 정비하겠다. 행동으로 국민들에게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결과를 만들어 국민들의 평가를 받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조직 쇄신의 강도가 클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우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는 대관, 대외로비 업무는 크게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정경유착을 끊겠다” “전경련에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 등 투명경영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만큼 대관 업무를 맡고 있는 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과 인사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직접 조직개편에 대한 수술작업을 지휘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기업 인수합병(M&A), 계열사 간 업무조정, 경영진단, 채용 등 고유 기능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각각 분산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 관계자는 “개별 계열사가 단점과 약점을 스스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객관적인 입장에서 체크하는 경영진단 기능은 필수적”이라며 “그룹 경영의 큰 그림을 그리는 기능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이 삼성전자를 정점으로 전자계열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삼성생명을 꼭짓점으로 하는 금융지주회사를 만드는 청사진을 구상하고 있어 이 같은 방향으로 교통정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전실에 소속된 전략팀 기능이 삼성전자로 이전되고 금융일류화추진팀 역할은 삼성생명으로 흡수되는 형태다. 일각에서는 그룹 전반의 경영현안과 리스크 관리를 맡을 위원회 형태의 별도 조직을 만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전실의 변형된 형태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전실 대체하는 ‘컨트롤타워 조직’ 필요=미전실 폐지는 인적 개편으로 연결된다. 이 부회장이 정경유착에서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2017년 사장단과 임원 인사, 조직개편에서 변화를 꾀할 가능성이 크다. 미전실은 전략팀·기획팀·인사지원팀·법무팀·커뮤니케이션팀·경영진단팀·금융일류화지원팀 등의 편제로 이뤄져 있다. 계열사에서 파견된 약 200명의 임원과 고참급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인원이 삼성전자 등 계열사로 원대 복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사이동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삼성그룹이 연루돼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고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도 하락한 만큼 미전실 수뇌부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다만 미전실이 완전히 해체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으로 전략기획실이 해체될 때는 2개월의 시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국정조사에 이어 앞으로 3~4개월간 특검이 전개되는 것에 맞춰 미전실을 중심으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미전실을 해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지주회사 체제가 구축돼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 전까지는 미전실의 인력과 기능을 줄이되 M&A와 경영 진단, 통합된 커뮤니케이션 등을 할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삼성에 비판적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도 청문회에서 컨트롤타워의 유지 필요성을 얘기했다. 이 부회장이 청문회에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방안을 고민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점을 감안하면 사회공헌이나 투명경영 관련 조직을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방안도 나올 수 있다. /서정명기자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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