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미래의 소재혁명을 이끌 기대주가 한국의 대덕연구개발특구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제25호 연구소기업 알이엠텍(대표 유정근)이 바로 그들이다. 지난 2011년 한서대학교로부터 출자 받은 ‘실리카 에어로겔 분말 제조 특허’ 기술을 4년간의 부단한 연구개발 끝에 마침내 혁신적인 양산 공정으로 진화시킨 이들은 곧 세계무대에 던지게 될 도전장 준비로 한창이다.
에어로겔(aerogel)은 공기를 의미하는 ‘aero’와 3차원의 네트워크 구조를 뜻하는 ‘gel’ 의 합성어다. 1931년 미국 캘리포니아 퍼시픽대학교의 화학기사인 스티븐 키슬러가 처음으로 실리콘 성분의 에어로겔을 만든 이래 지금껏 세계 곳곳에서 실용화를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대나무나 뼈처럼 얼기설기 이뤄져 있지만 공기가 드나들지 못할 만큼 촘촘한 구조가 가벼우면서도 단단하며 단열에 뛰어난 특성을 만든다. 무게도 공기의 3배 정도로 가볍고 빈 구멍이 많아 우주에서 혜성의 먼지를 수집하는 임무에도 사용됐다.
유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에어로겔 원료 시장에서는 미국의 한 메이저 회사가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미국 업체의 에어로겔 원료는 고온고압의 초임계 이산화탄소 공정으로 만들어지는데 제조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 알이엠텍이 에어로겔을 사업화할 당시만 해도 킬로그램 당 가격이 20~30만 원 선에 이를 만큼 고가다.
초임계 공정이 아닌 상온 상압의 신 공정을 개발한 알이엠텍은 이 가격을 크게 낮춰 새로운 에어로겔 소재 시장을 창조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유 대표가 생각하는 에어로겔 대중화의 적정 수준은 킬로그램 당 2~3만 원선. 이 정도 가격이면 건축과 에너지, 환경, 전기전자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에어로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공산이 크다.
유 대표는 “꿈의 소재라 불릴 만큼 탁월한 기능에도 불구하고 높은 가격은 그동안 에어로겔의 폭넓은 활용을 막는 최대의 걸림돌이었다.”면서 “에어로겔의 고부가가치화가 아니라 대중화를 목표로 합리적인 가격으로 에어로겔을 공급해 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알이엠텍의 생산 공정이 본격 가동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 바로 초임계 공정 에어로겔만큼 품질을 끌어올리는 게 관건이다. 알이엠텍의 상온상압 공정으로 가격 경쟁력은 잡았지만 아직 품질에서 초임계 방식을 완전히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유 대표의 설명이다. 알이엠텍의 연구원들은 각종 생산설비가 즐비한 회사 곳곳에서 미세한 품질 차이를 줄이기 위한 막바지 씨름에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제자와 단 둘이 회사를 시작했던 유 대표는 ‘망할 때 망하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생각으로 사재를 털고 빚을 내 지금의 연구원들을 모았다. 하지만 양산기술 개발은 쉽지 않았고 통장 잔고가 떨어져 난방유도 없이 한겨울을 버텨야 했던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연구소기업 설립 당시부터 그 잠재된 성장 가능성으로 인해 관계자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던 알이엠텍은 2013년 현대자동차로부터 10억, 이듬해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이 마련한 기술금융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는 이례적으로 담보 없이 기술 가치만으로 15억 원의 투자를 받으며 소위 말하는 ‘죽음의 계곡’을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상온상압 제조기술의 국내외 특허 등록을 마친 알이엠텍은 현재 하루 80~90킬로그램의 에어로겔 생산이 가능한 설비를 갖추고 본격적인 양산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와 함께 에어로겔 원료를 이용한 응용제품 개발도 한창이다.
유 대표는 “회사를 설립한 뒤 줄잡아 100여 개 기업의 관계자들이 저희 회사를 찾아왔었다”면서 “원료도 원료지만 산업현장 각각의 특수한 문제를 에어로겔로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이 몹시 시급해 보였다”고 말했다. 회사의 입장에서도 당장의 먹거리가 될 수 있기도 해 우리가 생산한 에어로겔로 다양한 응용제품을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그중 에어로겔을 접착소재로 활용한 유리섬유는 벌써부터 시장의 반응이 뜨겁다. 가격경쟁력은 물론이고 성형성, 발수성, 단열성과 600도 이상의 내열 기능까지 갖춰 석유화학단지나 발전소 등의 배관용으로 유용하게 쓰이리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18년부터 내열 기준이 크게 강화될 건축용 샌드위치 패널의 심재 역시 알이엠텍이 주목하고 있는 분야다.
유 대표는 “당장의 돈보다도 다른 곳에서 찾지 못했던 답을 우리 에어로겔 제품에서 찾아가시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면서 “에어로겔이 생활과 산업현장 모두를 혁신하는 진정한 꿈의 소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MINI INTERVIEW] 유정근 알이엠텍 대표
“ 교수 사회에도 잠재 기술 많아…장려책 생겼으면”
고려대와 파리6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유정근 대표는 1993년 비교적 이른 나이에 한서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다. 한동안 학문과 응용 사이에서 방향을 고민하던 그는 현장을 찾아다니며 비로소 자신의 적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사업의 관점에서 접근했던 것은 ‘플라이애시’라고 불리는 석탄재. 화력발전소에서 해마다 몇 백만 톤씩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마땅한 재활용 방법이 없어 200~300억 원의 처리 비용이 발생하는 것을 본 그는 큰 관심을 가지고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 사람의 연구결과가 축적되면서 단순한 폐기물이던 석탄재가 톤당 1만 원의 시멘트 원료로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보며 ‘아 이런 것도 사업화가 되는구나’ 깨닫게 되었지요. 그래서 미세분말인 플라이애시를 계속 연구하다 매년 800억 원 정도의 규모가 전량 수입되던 나노 실리카로 관심이 이어졌습니다. 내가 한번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게 바로 에어로겔이다. 뭉치지 않는 나노 실리카 분말을 만드는데 가끔씩 살짝 뭉쳐 있는 분말들이 보였다. 당시에는 그것이 에어로겔인 줄도 몰랐다.
“2007년경에야 비로소 그것이 에어로겔인 줄을 알게 됐고 본격적으로 창업을 준비했습니다. 중간에 우여곡절이 많아 한번 회사를 접었다가 2011년 연구소기업으로 다시 시작하게 된 거지요.”
150여 개에 이른 연구소기업 중 교수의 창업은 여전히 그리 흔치 않은 사례다.
“제가 창업할 당시에는 교수의 연구소기업 창업이 학교와 특구재단 모두에게 선례가 없던 일이라 다소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연구원은 휴직제도가 있었지만 대학은 연구소기업 제도 자체도 몰라 휴직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지요. 덕분에 학교와 대전을 수없이 오가긴 했지만 어쨌든 누군가를 위해 길을 냈다는 게 좋기도 합니다. 교수 사회에도 연구소 못지않게 잠재된 기술들이 많으니 교수들이 창업을 적극 유도할 수 있는 지원제도가 생기면 좋을 듯합니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구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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