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수렁에 빠져 가뜩이나 경영전략 수립에 애를 먹고 있는 기업들이 경영활동에 족쇄를 채우는 법안들 때문에 설상가상의 형국을 맞고 있다.
국회 다수당을 장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최순실 게이트=정경유착’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이번 정기국회에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
23일 제윤경 민주당 의원은 자사주를 이용한 재벌 오너들의 지배력 강화와 경영권 승계를 제한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가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회사를 분할할 경우 반드시 자사주를 미리 소각하도록 의무화했다.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서는 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당장 지주회사 설립을 검토하고 있는 삼성그룹, 현대·기아차그룹, SK그룹, 롯데그룹 등이 영향권에 놓일 수 있다.
현행 상법에 따르면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회사가 두 개로 분할할 때는 의결권이 사실상 부활한다. 총수들이 회사분할 때 의결권이 살아난 자사주를 활용해 지배구조를 더욱 공고히 쌓을 수 있는 만큼 이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대기업의 한 임원은 “국회가 최순실 게이트를 기회 삼아 지주회사 설립을 아예 차단하는 법안마저 내놓고 있다”며 “지배구조 효율화를 통해 경영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국회 입법이 되레 기업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상법개정을 비롯해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법인세 인상 등 경영 옥죄기와 관련된 무더기 법안을 중점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상법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주주대표 소송제 강화 등을 담고 있다. 야당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대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우호적이지 않은 이때를 활용해 법안 처리를 서두르겠다는 입장이다.
기업들은 좌불안석이다. 이전에는 경영 옥죄기 법안이 나올 경우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중심으로 대응논리를 만들고 공동으로 대처했지만 지금은 미르·K스포츠재단 사태로 방어막마저 무너진 모양새다.
이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해외 행동주의 펀드들이 시세차익을 노려 경영권 간섭에 나설 수 있고 경영권 방어에도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10대 그룹 임원은 “미국·영국 등 선진국들은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를 내세우며 기업 살리기에 올인하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역주행하고 있다”며 “정치 논리에 경제가 아예 함몰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정명기자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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