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치상황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지만 미래 먹거리 사업은 계속 키워야죠. 내년 사업전략은 차질없이 짜고 있습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스마트카를 비롯해 인공지능(AI)·가상현실(VR) 등 삼성이 점찍은 미래 사업은 계속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였다. ‘최순실 게이트’ 연루 기업을 수사하는 검찰이 삼성 계열사를 잇따라 수사하는 와중에 삼성전자가 무려 80억달러(약 9조4,000억원)를 들여 미국의 스마트카 부품 기업 ‘하만’을 인수한 것도 삼성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사례다.
삼성만이 아니다. 국내 정보기술(IT)·자동차 대기업들은 융복합 신사업을 향해 중단없이 나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포스코그룹까지 IT 융복합 산업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는 주요 제품의 결함으로 해외 시장에서 타격을 받는 악재까지 겹쳤지만 신사업에 대한 의지는 변함없는 모양새다.
학계의 한 전문가는 “IT·자동차 업계의 공통된 신사업이라 할 인공지능·사물인터넷(IoT), 그리고 이를 활용한 스마트카·스마트홈 산업은 한순간만 기술개발을 게을리해도 해외 경쟁사와 격차가 확 벌어진다”며 “한국 기업들은 미래 생존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환경 변화에 구애받지 말고 신사업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시장에서 마주한 복합 위기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기업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세계적 자동차 전자장비·오디오 기업인 하만을 인수해 단숨에 세계 스마트카 산업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앞서 올 6월에는 IoT 기반의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인 ‘조이언트’를 사들였고 이어 9월에는 음성인식 기반 AI 기술을 개발하는 ‘비브랩스’을 인수했다.
현대차도 전기차(EV)와 자율주행 커넥티드카에 명운을 걸고 IT-자동차 융복합 기술에 대한 투자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이미 올 상반기 EV 분야에서 야심작인 ‘아이오닉’을 출시해 도요타 프리우스, BMW i3 등과 겨루고 있다. 또 서울대와 자율주행 EV를 공동 개발해 내년 초 시험모델을 공개할 예정이며 중국 구이저우성에는 고객맞춤형 스마트카 연구개발(R&D)을 위한 빅데이터센터도 구축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자율주행이 가능한 차세대 스마트카 개발에 올해부터 오는 2018년까지 약 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SK그룹도 마찬가지다. SK텔레콤은 BMW와 협력해 5세대 통신기술이 융합된 커넥티드카 ‘T5’의 시험주행을 15일 인천 영종도에서 성공리에 진행했다. 5세대 커넥티드카의 세계 최초 등장인 셈이다. SK텔레콤은 최근 음성인식 AI 플랫폼인 ‘누구’도 출시하며 스마트홈 시장에서 지배력을 넓히는 추세다. SK㈜ C&C는 IoT를 활용한 스마트 공장 솔루션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 회사는 빅데이터와 AI를 결합한 자체 스마트 공장 솔루션인 ‘스칼라’ 개발에 올해 초 성공했다. 최근에는 애플 아이폰 조립사이자 세계 최대 가전조립 기업인 대만 훙하이와 손잡고 중국 충칭의 훙하이 공장을 스마트 공장으로 바꾸는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SK㈜ C&C는 빅데이터·AI 기술을 보안 분야에 접목하기 위해 2조원대 매물로 나온 보안업체 ADT캡스 인수도 검토하고 있다.
10여년째 IT와 차량 융합에 매달렸던 LG도 내년부터 성과가 본격적으로 나오며 융복합 사업에서 흑자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메이저 완성차인 제너럴모터스(GM)의 볼트 EV에 주요 부품을 공급하는 LG전자 자동차부품(VC)사업본부와 배터리를 대는 LG화학은 내년 초 볼트 EV 출시와 함께 매출·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늘 것으로 전망했다. LG화학은 “내년 볼트 EV의 예상 판매량이 3만대에 이른다”며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IT 융복합 기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철강업계의 맏형 포스코그룹은 최근 빅데이터 기술 확보에 주력하며 산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포스코는 포스텍과 협력해 경기도 판교에 빅데이터·AI 기술을 연구할 R&D 거점을 마련했다. 이를 토대로 스마트 공장 기술을 확보해 중국·일본과의 생산성·품질 경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와 관련, 포스코는 지난해 전남 광양시 후판 신공장을 시범 스마트 공장으로 선정하고 연관 부서 관계자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도 구성했다.
이처럼 거침없이 IT 융복합 신사업을 추진하는 기업들이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삼성전자 노트7 문제나 현대차 리콜 사태는 신사업만큼 기존 제품의 품질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우쳐준 계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2000년대 한국 기업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토대는 낮은 가격에도 좋은 품질을 갖췄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라며 “기업들은 향후 신사업을 안정적으로 키우기 위해서라도 소비자들의 신뢰를 우선적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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