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석과 박수홍. 국민 MC로 사랑받는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젊음’이다. 올해 각각 45세, 47세인 그들은 전혀 ‘아재(아저씨의 낮춤말)’스럽지 않다. 철저한 몸관리로 최근 아이돌 그룹 엑소와의 합동공연까지 마친 유재석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맨투맨 티셔츠·후드티·볼캡·롤업 팬츠 등의 패션으로 20대 못지않은 싱그러움을 뽐낸다. 반듯한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자타공인 ‘클럽 마니아’로 변신한 박수홍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살고 싶다”며 뽀글 파마와 염색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대중들은 그들의 영(Young)한 감성과 패션에 거부감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친숙해하고 동경하기까지 한다.
#.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일반 회사 직장인인 김모(37)씨는 10년째 한결같던 정장 패션을 집어 던지고 과거 즐겨 입던 맨투맨 티셔츠와 점퍼 등을 활용해 출퇴근 복장을 점점 캐주얼하게 바꾸고 있다. 어느 순간 빠르게 아재가 돼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속상해하다가 다시 유행에 민감하던 젊음 시절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학창시절 애용하던 브랜드인 슈프림과 아이다스의 신상품을 꾸준히 구입하면서 주말에는 좀 더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스타일을 뽐내고 있다. 김씨는 “애 아빠가 무슨 패션이냐는 사회적 통념에 자연스럽게 적응을 했었는데 이제는 ‘애 아빠가 뭐가 어때서’라는 말을 당당하게 한다”며 “주변에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또래들이 늘고 있어 자신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3040세대 남성들이 잃어버린 본능을 되찾고 있다. 사회적 편견 속에 묻어뒀던 젊음에 대한 갈증을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으로 마음껏 해소하고 있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추구하며 좋아하는 운동을 즐기고,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가치소비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이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 같은 현상은 ‘젊음이 권력’이 된 사회적 변화의 영향이 크다. 100세 시대가 도래하고 수직적·권위적 문화가 해체되면서 더이상 ‘나이 들어 보임’이나 ‘남들 시선’ 따위가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과거에는 나이에 맞게 갖춰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옷차림·행동·말투 등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그냥 젊다는 게 가장 큰 힘이다. 업계 관계자는 “1020세대의 문화를 동경하거나 과거 자신의 젊은 시절 문화를 되살리려는 ‘유스컬쳐(Youth Culture)’가 전 세계를 휩쓰는 메가 트렌드가 됐다”며 “과거에 향유했던 문화를 이어가려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30대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고, 자기만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소신있게 표현하려는 시대정신이 정보기술·SNS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키덜트족의 확산도 유스컬쳐 발달과 깊이 연관돼 있다. 레고·프라모델·피규어 등을 수집하는 것이 철없는 어른의 행동이 아닌 어린이의 감성을 추구하는 개성으로 존중받으면서 취향을 숨지지 않는 어른들이 속속 등장, 키덜트 문화의 폭발적 성장을 촉진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들은 새로운 문화와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적응력도 좋아 새로운 정보기술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1020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온라인 쇼핑에서 30~40대 이상의 소비 비중이 치솟고 있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에 따라 패션업계에서는 늘어난 수명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와 행복을 추구하는 ‘유스서티(Youth Thirty)’ ‘영포티(Young Forty)’가 핵심 소비 권력으로 부상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여성들이 주 타깃이었던 예전과 달리 구매력을 갖춘 3040세대 남성들을 공략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블랙야크가 국내 론칭한 포틀랜드 라이프웨어 나우(nau)는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이들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나우는 브랜드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livenau - Our Sustainers’란 타이틀의 다큐멘터리 북과 인터뷰 필름을 공개했는데, 관습과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소신과 취향을 지키며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즉 ‘서스테이너스’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번 다큐멘터리 북 작업에는 매거진 ‘벨보이’ 편집장과 안테나뮤직 스타일리스트를 겸하고 있는 박태일이 서스테이너스로 함께 참여했다. 그가 ‘지큐(GQ)’ 매거진의 수석 에디터 자리를 박차고 나와 자신만의 회사를 차리고 소신과 가치를 담은 비주얼을 선보이는 점은 진정한 유스서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나우는 꾸준히 건강하게 삶을 즐기는 움직임을 유도하는 ‘#livenau’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환경과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철학과 세련된 디자인의 제품으로 3040세대 남성에게 인기를 끌겠다는 각오다.
아웃도어 브랜드들도 아재 패션이라는 불명예를 떨쳐내기 위한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블랙야크의 스마트웨어가 대표적으로, 출퇴근에 어울리는 경량다운에 스마트 발열 기능을 넣어 신기술을 적극 수용하는 얼리어답터 이미지를 갖게 했다. 패딩의 온도를 스마트폰과 연계해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자신만의 가치와 개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3040세대 남성을 겨냥한 것이다.
블랙야크는 함께 즐기는 과정에 대한 열정, 나이와 상관없이 그 열정이 만들어내는 청춘(Youth)을 응원하는 취지로 ‘세상은 문 밖에 있다’ 브랜드 캠페인을 진행하며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11월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인 다이아몬드서플라이 코리아와의 협업으로 라이프스타일 북 ‘크루라이프’를 제작, 실제 스케이트 보드 크루들과 함께 다양한 스트리트 문화와 스타일링을 선보이며 유스컬쳐를 제시했다. 올해는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런던의 유스컬쳐와 다양한 스타일링도 선보였다.
세정의 웰메이드는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아가는 남성들을 응원하는 ‘굿맨을 굿맨답게’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남편이자 아버지로 열심히 살아가는 남성이 곧 ‘굿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일반 남성 고객을 주인공으로 선정해 서프라이즈 패션쇼를 개최하는 등 남성들의 패션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는 중이다. 이밖에 LF가 헤지스의 신규 비즈니스웨어 라인인 ‘미스터 헤지스’를 새로 출시한 것이나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자체 남성복 브랜드 ‘맨온더분’을 론칭한 것 역시 뜨거워진 남성 패션의 열기를 반영한 시도들이다.
남윤주 블랙야크 마케팅본부 팀장은 “상대적으로 여성들에게 가려졌던 3040세대 남성들이 경제력과 젊은 감각으로 패션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소비와 트렌드를 주도하게 되면서 업계에서 젊은 남심을 공략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며 “소비자들의 취향과 개성이 다양화될수록 이 변화를 놓치지 않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접근방식으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남들과는 차별화된 매력적인 브랜드 감성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