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기업 한화큐셀은 지난해 2·4분기 처음으로 수억원대 흑자를 낸 후 올해 같은 기간에는 영업이익이 1,000억원에 근접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주요 시장인 미국에서 친환경 태양광 발전 붐이 인 덕분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는 거짓”이라고 떠드는 억만장자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결정되면서 긴장감이 커졌다. 한화큐셀 관계자는 “트럼프는 친환경 에너지 대신 전통적 석유·석탄 발전을 키울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라며 “그가 공언을 실천하면 회사 성장에 급제동이 걸릴 수 있는 만큼 앞으로 그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국내외 언론의 예상을 깨고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트럼프 공포’가 현실로 닥쳐오고 있다. 당장 눈에 닥친 위협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비롯해 트럼프 당선인이 쌓아올릴 반덤핑 관세 등의 무역 장벽에 따른 기업들의 수출 감소다. 여기에 트럼프 당선인이 산업 시계를 거꾸로 돌려 친환경 에너지,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신성장 산업을 꺼뜨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악의 경우 18조5,000억달러(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 기준)가 넘는 미국 경제가 급속도로 악화해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당장 철강 업체들은 이미 보호무역주의의 피해를 직접 받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 8월 국내산 열연강판에 반덤핑·상계 관세를 적용하며 대미(對美)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포스코에 적용된 관세율은 총 60.93%, 현대제철도 13.38%에 이른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와 중국·베트남에서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섬유 제품도 한층 높아진 무역 장벽에 직면할 우려가 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 당선인은 한미 FTA는 물론 멕시코·캐나다와 맺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자유무역 기조에 반대하는 상황이다. 자유무역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한국 전기전자·자동차 산업에 직격타가 불가피하다. 벌써 퀄컴과 인텔·마이크로소프트(MS)는 최근 백악관에서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 위한 민관 합동반을 구성했다. 반도체부터 반도체가 쓰이는 각종 전자기기까지 모두 미국에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트럼프 당선인도 이런 기조에 맞춰 국내 혹은 중국을 거쳐 만들어진 한국산 정보기술(IT)·가전 기기에 높은 관세 장벽을 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국내 자동차 산업은 미국 판매량 가운데 48.1%를 미국 밖에서 생산하고 있어 트럼프의 행보가 걱정스럽다. 특히 현대·기아자동차는 멕시코를 북미 수출 전진기지로 키우고 있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공약대로 멕시코산 제품에 35% 고율 관세를 매긴다면 수익성·점유율이 폭락할 수 있다. 김용근 자동차산업협회장은 “멕시코에는 미국 주요 자동차 업체도 생산기지를 두고 있어 트럼프 당선인이 이들의 반대를 뚫고 관세 부과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라면서도 “넓게 보면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에 한국 자동차 산업이 큰 타격을 볼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트럼프 당선인이 1조달러 이상을 미국 내 인프라 사업에 투입하고 전통적 석유·셰일가스 개발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혜택을 보는 일부 기업도 있다. 국내 정유4사나 건설 장비 기업들은 트럼프 수혜주로 분류돼 주가가 오를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또 트럼프 당선인이 ‘강한 미국’을 건설한다며 국방비 지출을 늘리고 무기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방위산업체들의 수출이 늘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이 의약품 가격을 시장 경쟁에 의해 결정하도록 정책을 바꾸겠다는 약속을 지킬 경우 제약·바이오 산업의 수혜도 가능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업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 공약에 ‘미래를 향한 비전’이 없다는 점을 극도로 염려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친환경 에너지 산업이나 전기·자율주행차·인공지능(AI)을 포함한 미래 산업에 대한 어떤 청사진도 내놓지 않았을뿐더러 육성 의지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대 시장 미국이 신산업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면 국내 기업들의 신성장 동력 육성도 멈춰 설 수 있다.
또 신용평가사 무디스나 피터슨 연구소, 월스트리트저널(WSJ) 같은 저명한 해외 기관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경제정책이 세계경제를 침체기에 빠뜨릴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마저 내놓는 실정이다. 그의 강고한 보호무역주의가 각국의 무역 보복을 유발하고 미국 내 수백만개 일자리를 없앨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협회장은 “트럼프 집권기는 전 세계적 산업 발전 정체를 몰고올 것으로 우려되지만 국내 기업은 신산업 육성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는 자세로 투자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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