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회장의 특별사면 이후 가까스로 경영 정상화에 나선 CJ(001040)그룹이 정권의 인사개입 논란과 특혜 의혹에 이어 총수 일가의 비극적 가족사까지 겹치면서 또다시 내우외환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 8월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이 회장은 신병 치료에 집중한 뒤 이르면 내년 초 경영복귀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잇단 악재와 의혹으로 재계 서열 13위인 CJ그룹의 항로가 안갯속으로 내몰리는 모양새다.
6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CJ그룹은 차세대 한류 프로젝트인 K컬처밸리 프로젝트에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측근 차은택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K컬처밸리는 CJ E&M(130960)이 지난해 12월 수주한 사업으로 오는 2017년까지 1조4,000억원을 투자해 한류를 주제로 공연장·쇼핑몰·숙박시설 등을 짓는 대규모 사업이다. 하지만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뒤흔들면서 차씨가 K컬처밸리 사업자 선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관할 의회인 경기도의회에 통보 없이 갑자기 사업자가 선정되고 CJ E&M이 외국인 투자 기업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연 1%의 임대료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받았다는 점에서 특혜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앞서 3일에는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2013년 7월 손경식 CJ그룹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강권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 부회장은 1995년 이 회장과 함께 미국 드림웍스에 3억달러를 투자하며 CJ그룹이 문화창조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틀을 닦은 주역이지만 2014년 10월 건강악화를 내세워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일각에서는 손 회장이 7년 동안 맡았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그만둔 것도 청와대로부터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의 비극적인 가정사도 CJ그룹의 경영 정상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 회장이 구속된 지난해 8월 부친 이맹희 명예회장이 중국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모친 손복남 여사도 뇌경색으로 쓰러져 투병 중이다. 5일에는 이 회장의 장남 이선호(26)씨와 백년가약을 맺은 이래나(22)씨가 미국 코네티컷주 자택에서 돌연 숨진 채 발견됐다.
이 회장의 사면으로 ‘총수 부재’라는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벗어나는 듯했던 CJ그룹이 또다시 악재에 내몰리면서 CJ그룹 임직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장 신병 치료 후 내년 초 경영 일선에 복귀하려던 이 회장의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고 최근 들어 탄력을 받기 시작한 글로벌 인수합병(M&A) 전략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경영 공백 기간에도 수정이 없었던 그룹 비전인 ‘그레이트 CJ(2020년까지 그룹 매출 100조원, 영업이익 10조원, 해외 비중 70% 달성)’도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CJ그룹의 한 관계자는 “짧은 기간에 여러 의혹과 악재가 겹치면서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대내외적으로 변수가 많지만 이 회장이 사면 이후 남은 인생을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하겠다고 천명한 만큼 그룹 비전을 비롯한 장기적인 목표를 수정하는 방안은 현재로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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