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 너무 창피해서 말도 꺼내기 싫어요”
택시 차고지에서 근무 교대를 기다리던 정문종(가명·62)씨는 ‘최순실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말을 꺼내기조차 꺼려했다.
박근혜 대통령 측근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파문으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명의 민심을 접하는 ‘시민의 발’이자,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 불리는 60세 이상 비율이 올해 기준 47.1%에 이를 정도로 높은 계층인 택시기사들의 눈으로 본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땠을까.
서울경제신문 기자들은 택시기사들을 직접 만나 이번 사태에 대한 민심을 들어봤다. 일찍 찾아온 추위로 초겨울 날씨였던 지난달 31일. 용산구, 서대문구, 마포구, 서초구의 택시회사와 기사식당에서 만난 택시기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현 시국은 날씨만큼이나 얼어붙어 있었다. 12시간의 운행을 마치고 휴식을 위해 들어선 차고지 휴게실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는 기사들의 사이에선 연신 ‘쯧쯧’이란 감탄사와 한숨이 터져나왔다.
마포구의 한 택시회사에서 만난 최종열(가명·69)씨는 분노에 말끝을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살면서 줄곧 새누리당만 지지해온, 소위 말하는 ‘콘크리트 지지층’이었던 최씨는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씨는 “아직까지도 새누리당은 뭘 잘못한 줄 모르고 큰소리만 치고 있다”며 “앞으로는 절대 ‘1번’을 뽑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50여 년 동안 쌓아올린 콘크리트 지지층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서초구의 한 택시회사도 냉랭한 분위기는 비슷했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최씨와 박 대통령 관련 보도에 택시기사들은 짧은 휴식시간에도 맘 편히 쉬지 못하고 있었다. 믹스커피 한 잔씩을 손에 쥐고 모인 택시 기사들은 뉴스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기자에게 최씨 관련 소문들의 진위 여부를 묻기도 하는 등 ‘최순실 사태’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주용(가명·65)씨는 이번 사태에 대해 “대통령이 민생은 돌보지 않고 사이비 종교단체에 놀아나는 사이 가장 빈곤층인 택시기사들은 피를 토했다”며 대통령으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외국에서 보면 북한의 독재정치만큼 우리나라도 비상식적으로 보일 것”이라며 “나라 망신”이라고 허탈해 했다.
기자들이 만난 택시기사들이 국가에 바라는 것은 한 가지로 모아졌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져서 혼란을 해결하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서대문구의 한 기사식당에서 만난 황의정(70)씨는 “남은 임기동안 거국내각을 꾸려 야당과 협치를 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조씨도 “내일을 생각하며 혼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후손들한테 어떤 나라를 물려줄지를 생각하며 정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역대 어느 대통령의 권력형 비리와는 궤를 달리한다. 대통령 측근들이 벌인 과거의 비리와 달리 이번 사건은 주동자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최순실과 그 측근들만 수사해서는 제대로 된 진실을 밝힐 수 없다. 실체적 진실 규명에서부터 이 정국은 풀릴 수 있다. 검찰은 헌법상 대통령은 내란과 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소추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조사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법률적 측면에서만 그렇다.
이날 하루 만난 택시 기사들 상당수가 대통령 자신이 수사를 받겠다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의 말속에 답이 있다. “리더에게는 어떠한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대통령으로서 책임감을 보여야 국민이 이를 믿을 수 있다(조용수,67)”
/이종호기자·정승희인턴기자·이재아인턴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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