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서 우리 경제의 위험신호가 감지되고 있음에도 한국 경제의 조타수인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회 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등이 정책공조는커녕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핑퐁게임을 벌여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정책을 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지만 정부 내부에서 조율되지 않은 채 그대로 표출돼 경제주체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해외에서 언론을 상대로 공중전을 펼쳤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서 유 경제부총리가 “기준금리 (인하) 여력이 있다”고 밝히자 이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IMF가 한국의 양호한 재정건전성을 지목한 것을 언급하며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인다”고 되받았다. 이에 유 부총리가 다시 “재정은 쓸 만큼 썼다”고 반박했다. 수출과 내수가 동반 부진한 가운데 경기 부양 해법을 놓고 서로에게 총대를 메라고 떠넘긴 셈이다.
이 같은 두 수장의 갈등 표출에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1일 “재정과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우리 경제 두 수장의 다른 시각이 외국에서까지 민망한 모습으로 표출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선·해운 등의 구조조정과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하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10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임 위원장은 8월25일 금융위가 가계부채대책을 발표한 후 수도권 집값이 오히려 급등해 정책의 실패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8·25대책은 상반기 가계부채 증가율이 빨랐던 점을 고려한 가계부채 관리대책이지 부동산 대책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8·25대책과 연결해 금융위가 추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든가 (재건축시장 과열이) 이것 때문에 발생했다든가 하는 해석은 대책을 내놓았던 상황 및 그 이후 결과와 동떨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같은 임 위원장의 발언은 ‘8·25대책’이 서울 수도권 주택시장에 미친 영향을 간과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시장은 이 대책이 주택공급 축소를 유도하는 정책으로 받아들였고 강남 재건축 아파트 등의 가격은 최근까지도 급등세를 타고 있다. 윤 정책위의장은 임 위원장의 발언과 관련, “가계부채 폭탄을 제거하랬더니 금융불안 폭탄만 제거하는 금융위가 가계부채 정책의 키를 쥘 자격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각 부처에 따라 시각이 다를 수 있고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당연히 있겠지만 정부 내부에서 사전에 조율돼야 하는데 지금은 이러한 조정 기능이 상실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대통령의 임기 도래가 가까워지면서 경제가 아닌 정치 영역에서 여야 간 힘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며 “자연스레 경제 분야에 대한 정권의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경제부처들 역시 책임을 떠넘기고 보자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도 “정권 말기가 도래하면서 각 경제부처 수장들이 각자도생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며 “결국은 청와대가 중심을 잡아줘야 하지만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종=이태규기자 김상훈·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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