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공기업에 다니는 이승희(34·가명)씨는 최근 매입한 아파트 잔금을 치르기 위해 은행에서 1억원 한도의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했다. 이씨가 주택 구입자금 마련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이 아닌 총액한도신용대출을 선택한 것은 금리 때문이다. 기존 주택을 판 대금에다 6,000만~7,000만원의 대출을 받으면 점 찍어둔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이씨. 이 정도 규모는 신용대출로도 충분히 가능했고 해당 은행이 금융공기업 직원에 대한 우대금리를 적용하면서 연 2.2%의 금리로 필요자금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씨처럼 낮은 금리로 은행 신용대출을 이용하기가 어려워진다.
3일 금융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시중은행들에 신규 가계대출 자제를 권고했다. 정부가 내놓은 8·25가계부채대책에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자 은행 창구 관리에 돌입한 것이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집단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에 대해서도 총량 조절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은행들은 신용대출 여신 심사도 깐깐히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고위관계자 역시 “가계대출 총액 증가세가 너무 가파른 점은 은행 입장에서도 부담”이라며 “금융당국과 대출심사 강화와 관련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 창구의 대출심사 강화로 신용대출 금리가 상승하고 대출한도도 축소될 것으로 관측된다. 우대금리를 축소하고 가산금리를 상향 조정하는 방식으로 금리도 올릴 것이라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KEB하나은행 등 대형 시중은행들은 신용등급 1~2등급인 고객에게 3% 중반대, 3~4등급 고객에게 4% 초중반대, 5~6등급 고객에게는 5%대의 신용대출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의 경우 코픽스 등 기준금리에 고객의 신용도와 거래실적에 따른 가산금리를 더해 산정한다”며 “가산금리 산정을 보수적으로 하더라도 신용등급별로 현재보다 0.1~0.5%포인트가량 금리상승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 창구에서 신용대출 심사를 엄격하게 하면 대출한도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용대출 심사 강화는 금리 측면과 더불어 한도 측면에서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소득과 자산·직장 등 대출한도를 결정하는 항목에 대한 심사도 강화해 전반적인 대출 총량을 억제하겠다는 얘기다.
금융당국과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집단대출에 이어 신용대출을 억제하기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가계대출 총량이 너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은행들로부터 올해 가계대출 총액 목표치와 현재 대출액을 건네받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은행들의 6월 말 기준 대출잔액이 이미 올해 목표치를 넘어섰고 신용대출 역시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은행권에 따르면 2014년 94조3,000억원을 기록했던 은행의 가계신용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101조1,000억원으로 늘었고 올해 6월 기준으로는 105조1,000억원까지 증가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계절성을 제외하면 큰 변동성을 보이지 않던 신용대출이 지난해부터 저금리와 부동산 거래 활성화가 맞물리면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주택거래시 계약금과 중개수수료, 인테리어 및 이사비용 등 주택 관련 대출의 성격을 가진 자금의 상당액이 신용대출로 공급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기업 대출을 줄이는 대신 가계대출을 늘렸던 은행 입장에서도 총액이 너무 늘어난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은행의 전체 대기업 여신 규모는 436조7,830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8조9,237억원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가계대출은 23조784억원 늘어났다. 부실여신 비중은 대기업 4.46%, 가계대출은 0.32%를 기록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연체율이 높지 않은 점에서 가계대출은 기업대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면서도 “다만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본비율을 높여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대출자산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BIS 자본비율은 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눠 산정하는데 대출 등 위험가중자산이 늘어날수록 감소한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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