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하고 세련된 샤오미 스마트폰이 급격한 성공을 거두면서, 이 중국 신생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비상장 기업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지금은 매출이 정체되고 있다. 샤오미의 ‘생태계’는 과연 450억 달러라는 기업가치에 걸맞게 성장할 수 있을까?
2015년 1월 15일: 1개 여단 정도는 수용할 정도로 큰 베이징의 한 컨벤션 홀에서 중국 신흥 기술기업 샤오미 Xiaomi가 대형 화면을 장착한 휴대폰 신모델 미노트 Mi Note를 선보였다. 할리우드 영화 시사회를 방불케 하는 대대적인 행사였다. 수천 명의 요란한 팬들이 몰려들어 15달러짜리 입장권이 모두 매진됐다.
찢어진 청바지와 운동화, 파란 셔츠를 입고 무대에 오른 CEO 레이 쥔 Lei Jun은 자신감이 넘쳐 건방져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를 탓할 수는 없다. 그가 2010년 설립한 샤오미는 중국의 거대한 중산층과 청년 문화에 특화된 저렴하고 세련된 휴대폰을 판매해 세계 4대 스마트폰 기업으로 성장했다. 샤오미는 최근 투자 유치로 450억 달러라는 놀라운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비상장 신생기업이 됐다.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온라인 서비스와 스마트홈 제품을 아우르는 ‘생태계’-스마트폰 구매자가 수년 간 충직한 고객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여기서 나온다-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였다.
IT전문 언론인들은 샤오미를 ‘중국의 애플’로 부르기 시작했다. 샤오미 휴대폰이 싸구려 아이폰 복제품에 불과하다고 불평하는 진짜 애플 디자이너들이 진저리 치는 표현이다. 레이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베이징에 모인 청중 앞에서 샤오미 휴대폰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레이는 “미노트는 아이폰6 플러스보다 더 가볍고 얇으며, 폭이 좁고 길이가 짧은데도 스크린은 더 크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후 몇 달 간 고객들은 그의 자부심을 유효하게 만드는 움직임을 보였다. 샤오미는 스마트폰 매출 분기 실적 최고치를 경신했고, 게임과 앱, 서비스 월 이용자는 1억 명을 넘어섰다.
2016년 5월 21일
다시 베이징으로 가보자. 그러나 이번엔 좀 더 오래된 전시회장에서 열린 정부 후원 기술 콘퍼런스 행사다. 매출이 불안정해진 스마트폰은 이젠 참석자 대다수가 꺼리는 주제다. 한 샤오미 관계자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년 회사 매출이 3% 증가한 125억 달러에 그쳤다는 사실을 발설했다. 1년 전 레이 쥔은 대담하게도 160억 달러 매출을 예측했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극찬을 받은 샤오미 생태계 제품의 서비스 매출이 회사 기대치의 절반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이 실적은 원래 비공개 정보였다. 중국 사이트들은 인터뷰 인용문을 신속히 삭제했고, 샤오미는 해당 실적 관련 언급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샤오미의 매출 성장세가 중단되고 기업 혁신이 위험에 처했다’는 업계 분석가들의 기존 의구심만 더욱 증폭시켰다.
샤오미 사례는 기술 ‘유니콘 unicorn’ *역주: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신생 벤처기업 들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익숙한 헤드라인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샤오미는 단순히 수십억 달러 가치를 지닌 비공개 신생기업이 아니다. 중국의 소비자 중심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걸 국가 차원에서 증명하는 데 혈안이 된 상황에서 부상한 신흥 세력이기도 하다. 작년 레이는 “샤오미의 기업 미션은 중국 제품에 대한 전 세계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샤오미는 더 이상 ‘가장 가치 있는 신생기업’은 아니지만-이 타이틀은 이제 차량 공유 앱 우버에게 넘어갔다-450억 달러에 이르는 기업가치는 여전히 기업의 포부를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샤오미가 이 수치를 제품 설명서에 실을 정도다(기업가치를 이보다 약간 높게 평가하는 애널리스트들도 있다).
아이폰의 절반 가격에 팔리는 샤오미 휴대폰이 기술 관련 언론에서 찬사를 받기는 하지만(수익에도 다소 기여했다), 실제 기업가치 상승은 휴대폰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아니었다. 민간 투자자들은 샤오미가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제품, 서비스, 반복되는 매출창출(recurring revenues)이라는 네트워크-애플과 같은 생태계다-를 구축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기 때문에 샤오미 가치가 페덱스 FedEx나 캐터필러 Caterpillar, 델타항공(Delta Air Lines)보다 높아질 것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면 샤오미가 추구하는 생태계는 애플보다 더 야심 차다. 애플은 아이튠스 같은 서비스와 태블릿, 컴퓨터, 스마트폰 같은 상당히 집중된 제품 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샤오미는 광범위한 사물인터넷(IoT)을 구상하고 있다. 이 회사는 언젠가 샤오미 정수기, 샤오미 공기청정기, 샤오미 무드등 같은 샤오미 스마트홈 전체가 휴대폰 터치 몇 번으로 통제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경영진과 투자자들은 현재의 실망스러운 실적에 대해 목표 달성을 위한 여정의 작은 걸림돌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다. 모건스탠리 기술 애널리스트 출신인 벤처 투자자 리처드 지 Richard Ji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생태계 구축과 글로벌 진출에서 샤오미는 여전히 초기 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설립한 홍콩 소재 올스타 인베스트먼트 All-Stars Investment는 지난 2014년 샤오미의 대규모 투자 유치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생태계 구축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는 중국 중산층의 부상, 사물인터넷의 대중화, 소비자 중심 중국 기업들의 유럽 · 미국 진출 역량 등 몇 가지 혁신적인 변화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샤오미의 발전이 둔화하면서, 자사 혁신기술이 부재하고 스마트폰 매출 외에는 큰 성공을 못 거두고 있는 신생기업이 애플이나 구글 같은 고객 충성도 높은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중국 전문 인터넷 컨설턴트이자 전자상거래 공룡 알리바바의 초기 자문위원 출신인 덩컨 클라크 Duncan Clark는 “근본 축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은 샤오미의 전망을 더욱 흐리게 하고 있다.
경영진은 샤오미가 ‘스마트폰 신생기업’이라는 주장에 반대한다. 그들은 ‘인터넷 기업’이라는 표현을 더 선호한다. 지난 5년 간 스마트폰 판매 실적이 1억 7,500만 대에 달했지만, 샤오미는 ‘인터넷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다. 최근까지 소매판매점이 따로 없어 휴대폰 대다수가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됐다. 중국 내에서 샤오미 휴대폰은 자사 운영체제(OS)-구글 안드로이드를 많이 변형한 버전이다-와 온라인 음악, 앱 스토어가 탑재돼 출하되고 있다.
몇 년 전 샤오미는 휴대폰 구매 고객만으론 큰 ‘반복 매출’을 올릴 수 없으며, 이들이 휴대폰 신규 구입 고객을 유인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다양한 색상의 배터리를 스마트폰 액세서리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샤오미의 글로벌사업부 책임자 휴고 바라 Hugo Barra는 배터리 판매 호조로 ‘이거구나’ 싶은 순간이 왔다며, 그때 “새 제품이라고 왜 안 되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브라질 출신 MIT 졸업생인 바라는 구글 안드로이드 신제품 총괄 출신으로, 샤오미의 글로벌 브랜드 전환을 위해 영입됐다. 그는 “휴대폰 판매보다 사용자를 최대한 늘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샤오미 경영진은 단말기가 사용자를 끌어들인다면, 다양한 기기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샤오미의 생태계 구축 노력은 생태계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핵심 팀원 170명은 제품 개발, 공급망, 디자인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조니 아이브 Jony Ive가 이끄는 애플의 디자인팀과는 달리 샤오미 디자인팀은 주로 외부기업과 협업을 한다. 하드웨어 신생기업과 협약을 맺고(종종 기업을 신설하기도 한다), 생태계 관련 제품 제작을 위한 초기 자금을 제공하는 식이다. 샤오미는 완전히 통제하는 것을 피하면서 신생기업 창업주들이 모험적인 사업가 정신을 발휘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샤오미는 신생기업 제품 대다수에 대한 독점 계약도 맺는다. 신생기업들-현재 55개에 달한다-은 샤오미의 공급망과 마케팅, 산업 엔지니어들까지 활용할 수 있다.
베이징공대 산업디자인 학장 출신 리우 더(43) Liu De는 생태계 구축을 위해 거의 모든 부분이 연관성을 갖는 ‘포괄적 접근법(blanket approach)’을 활용하고 있다. 샤오미는 헤드폰, 블루투스 스피커, 알람 시계 기능이 포함된 피트니스 팔찌 등도 판매한다. 이제까지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은 멀티탭, 보조 배터리 등 ‘스마트’하지 않은 일상 제품들이다. 샤오미의 궁극적인 목표는 완전히 동기화되는 스마트홈의 구현이다.
지난 4월 베이징에서 샤오미는 언론인 300명을 초대해 150달러짜리 스마트 밥솥을 공개했다(사용자는 스마트폰을 통해 ‘물 흡수’에서 ‘강불(big fire)’ 단계까지 취사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작년 샤오미 생태계가 올린 매출은 약 7억 5,000만 달러 수준이었으나, 이 중 대부분은 수익공유계약에 따라 신생기업에 돌아갔다. 마케팅리서치 기업 주니퍼 리서치 Juniper Research에 따르면, 중국 내 스마트홈 시장은 2018년 150억 달러까지 성장할 정도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리우는 샤오미 생태계 매출이 5년 내 스마트폰 매출과 동일한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에는 샤오미 총매출 125억 달러 중 90%가 스마트폰에서 나왔다. 리우와 샤오미의 목표는 대부분 국내사업에서 발생하고 있는 생태계 매출 7억 5,000만 달러를 최소한 110억 달러 이상의 글로벌 사업 매출로 키운다는 것이다.
샤오미의 파트너 신생기업 중 하나인 이라이트 Yeelight 방문을 통해 이런 노력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알 수 있었다. 독일 식민지배를 받은 해안도시 칭다오 Qingdao에 자리잡은 이라이트 본사에는 직원 60명이 근무를 하고 있다. 이 회사는 1,600만 개의 색상을 연출하는 ‘스마트’ 무드등과 블루투스로 작동하는 전구-네덜란드 전자기업 필립스의 전구 휴 Hue와 매우 유사하다-를 판매한다.
2014년 구글이 네스트 Nest를 32억 달러에 인수하자 스마트홈 신생기업들이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은 이라이트 창업주 에릭 장 Eric Jiang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장은 샤오미의 제안을 뜻밖의 행운과도 같았다고 묘사했다. 샤오미는 브랜딩에서 제품 품질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의 지원을 약속했다. 또 이라이트가 통상 판매가의 40%를 떼어간 기존 유통업체들을 거치지 않도록 했다. 대신 이라이트 제품을 월 평균 순방문자 수 1억 4,000만 명 이상(차이나랭크 China Rank 추정)인 샤오미 홈페이지-장은 이 홈피를 ‘트래픽 계의 소방 호스’라고 묘사한다-전면에 게시했다.
이라이트는 작년 여름 이후 전구와 무드등 50만 개를 판매했다. 장은 샤오미의 투자를 받기 전에 비해 10배 오른 실적이라고 설명했다. 가격은 필립스의 휴 기본 키트보다 80%나 저렴하다. 이 같은 실적은 샤오미가 자사 생태계를 통해 달성하려는 상생의 성공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라이트는 샤오미에 대한 회의론이 강화되는 사례이기도 하다. 생태계 내 신생기업 상당수가 겪는 문제를 잘 보여준다. 이라이트는 중국 소비자들-가처분 소득이 미국인의 20%에 불과하다-이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생필품을 판매하지는 않는다. 또 중국 외 지역에서 판매를 시작할 경우, 상당히 낮은 기존의 제품 가격이 상승할 수 밖에 없다. 전구도 해외에선 특허를 등록해야 하는 지식재산(IP)이기 때문이다(중국의 지식재산법은 서류상으론 엄격하지만, 실제 단속은 느슨하다). 루슨트 Lucent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인 장은 이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내놓았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판매하려면 다른 기업으로부터 특허권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을 해야 하며, 그렇게 되면 소매가가 몇 %포인트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샤오미의 전자상거래 사이트는 해외에 기반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기존 유통업체들과 협업을 해야 한다. 그럴 경우 소매가가 30~40% 추가로 상승하게 된다. 결론은 이라이트가 자사 혁신기술을 개발하지 않는 한, 중국 밖에선 가격 경쟁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샤오미 스마트폰도 해외에서 유사한 지적재산권 문제에 부딪혀왔다. 스웨덴의 거대 통신업체 에릭슨 Ericsson은 수년째 샤오미가 자사 무선 기술을 무단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4년 샤오미가 인도에서 스마트폰 판매를 시작한 후, 인도 법원은 에릭슨의 판매 중단 요청을 받아들였다(해당 특허 소송은 진행 중이며, 샤오미는 이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지난 5월 샤오미는 휴대폰 지적재산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500개의 특허를 사들였다. 그러나 이 특허들은 전구나 정수기에는 별 효력이 없다. 리우는 “최소한 생태계 내 기업 일부는 이런 (지적재산권) 문제를 갖고 있다”고 인정했다. 샤오미 홈페이지의 지원 없이 해외 도약에 성공한 생태계 제품은 극소수다. 그마저도 마진이 높은 ‘시그니처’ 제품이 아니다. 예컨대 미밴드 Mi Band 피트니스 트래커는 미국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판매가는 고작 15달러다.
3년 전 레이 쥔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단순히 저렴한 휴대폰을 만드는 저렴한 중국 기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 소비자 대부분은 그런 인식을 고수하고 있다. 샤오미 일부 제품에 대한 신뢰도 문제 때문이다. 올해 상하이 당국은 샤오미의 첫 번째 공기청정기 제품인 미 Mi의 공기정화율을 문제 삼았다(샤오미는 해당 제품이 ‘베이징 당국의 모든 요구기준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샤오미의 소매가 620달러짜리 4K TV에 대한 불만도 회사 소비자 게시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업의 명성을 높여준 스마트폰에서도 문제가 나오고 있다. 샤오미는 아이폰 제조기업 폭스콘 Foxconn 등 다양한 공급업체에 의존하지만, 제품 신뢰도를 보다 성숙한 경쟁기업 수준으로 높이지는 못하고 있다. 일부 미 휴대폰 사용자들은 액정 파손과 이어폰 단자의 잡음 발생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지난 3월 출시한 샤오미의 신규 플래그십 스마트폰 미5에 대해서도 화씨 120도(약 섭씨 49도)까지 오르는 발열 문제 등 구매자들의 불만이 나오고 있다.
샤오미는 기기 관련 불만이 ‘개별 사례’라며, ‘합리적인 고객 불만 사례는 모두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휴대폰의 신뢰도 하락 문제는 기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 컨설턴트인 클라크가 최근 중국 내 휴대폰 사용자를 조사한 결과, 샤오미 사용자의 37%만이 재구매 의사를 밝혔다. 74%가 아이폰을 재구매하겠다고 응답한 애플 사용자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클라크는 “샤오미 고객은 충성도가 낮다”며 “생태계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면 이런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겠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못하다. 레이는 미노트 출시 전인 2015년 스마트폰 1억 대 판매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리서치 기업 IDC에 따르면, 작년 판매량은 7,100만 대에 머물렀다. 올해 1분기 샤오미의 휴대폰 판매량은 1,090만 대로 전년 동기 대비 26%나 급감했다(같은 기간 글로벌 휴대폰 판매량은 0.5% 감소했다).
이런 수치 때문에 샤오미의 450억 달러 기업가치는 불안해 보인다. 매출 125억 달러에 대한 영업 마진이 10%라고 가정하면, 이 기업가치는 이익의 38배에 이른다. 샤오미가 휴대폰 사용자 확대를 위해 원가에 근접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진은 5%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더 높다(이것도 후한 평가다). 이럴 경우 샤오미의 세후 기업가치는 이익의 80배, 매출의 4배라는 의미가 된다. 샤오미가 상장업체였다면, 애플 같은 기업 가치에 가까워지기 위해선 회사의 매출이 지금의 최소 4배는 돼야 한다.
샤오미가 상장을 했다면 성난 투자자들이 이미 주식을 팔고 도망쳤을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다. 애플의 경우, 지난 4월 주요 스마트폰 판매가 둔화됐다고 발표한 이후 주가가 12%나 하락 했다. 애플의 기술 생태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며, 총 매출의 12% 수준인 60억 달러가 분기 매출로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생태계의 판매량은 기기 매출 성장으부터 큰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스마트폰 모델이 출시되면 앱이나 서비스 구매도 증가하고, 관심이 사그라들면 소비도 급감하는 식이다.
물론 샤오미는 비상장기업이다. 매출도 강세를 보여 자금을 추가 확충할 필요도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샤오미는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다운 라운드 down round’-투자 유치를 위한 펀딩 라운드에서 기업가치가 이전 라운드보다 하락하는 현상-을 피할 수 있었다(회사가 사채 발행을 하려 한다는 보도는 나오고 있다). 샤오미의 초기 투자자이자 베이징 소재 슌웨이 캐피털 Shunwei Capital의 공동 창업자인 턱 리에 코 Tuck Lye Koh를 포함한 투자자들은 샤오미가 중국의 사물인터넷 시대를 주도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들은 샤오미가 저비용 혜택을 누리는 인터넷 기업이자, 향후 고품질 · 저비용 상품을 대량 생산하는 이케아 Ikea와 같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올스타 인베스트먼트의 리처드 지는 샤오미의 스마트폰 가격이 낮기 때문에 잠재 고객 기반이 애플보다 탄탄하다고 주장한다. 지는 회의론자들에게 텐센트 Tencent를 예로 든다. 중국 인터넷 대기업 텐센트는 위챗 WeChat 출시 전에는 대체적으로 투자자들이 무시했던 기업이었다. 이후 위챗은 중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셜네트워크 앱으로 부상했고, 텐센트 매출은 2011년 이후 4배 이상 성장할 수 있었다.
지는 샤오미도 유사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 전망한다. 그러나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다. 한 투자자에 따르면, 지난해 샤오미의 앱 · 게임 매출은 목표치 10억 달러에 못 미치는 5억 6,000만 달러에 머물렀다. 또 텐센트나 애플과는 달리, 샤오미의 생태계 성장은 경쟁이 치열하고 마진은 낮은 밥솥이나 드론 같은 기기 판매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뭄바이 소재 카운터포인트 리서치 Counterpoint Research의 닐 샤 Neil Shah는 “이런 제품들은 용도가 하나뿐”이라며 “밥솥은 밥을 지을 뿐, 콘텐츠를 소비하지는 않기 때문에 추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샤오미가 기업가치 450억 달러에 부응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 평가를 내린 투자자들을 동정할 필요는 없다. 2014년 말 펀딩 라운드에서 샤오미를 위해 11억 달러를 유치한 주요 투자자들은 싱가포르 국부펀드 GIC, 리처드 지의 올스타 펀드, 러시아 억만장자 유리 밀너 Yuri Milner의 DST, 알리바바 창업자 잭 마 Jack Ma가 관련된 윤펑캐피털 Yunfeng Capital 펀드 등이었다. 이 투자자들이 포춘에게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펀딩이 샤오미의 발전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늦게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이 투자가 ‘래칫 ratchet’ 거래-샤오미가 투자를 추가 유치하거나, 공모가가 기업가치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주식을 부여하는 계약-였을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들이 예상하는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하더라도, 샤오미가 성공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 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Mobile World Congress에서 공개한 미5 스마트폰 덕분에 매출이 증가세로 전환할 수도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특허 계약으로 더 많은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다. 인도와 브라질 시장 진출 덕분에, 현재 샤오미는 매출의 9% 정도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중국 기업치곤 이례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샤오미에선 스마트홈 생태계 구축이라는 꿈도 자라고 있다(물론 이 분야를 노리는 업체가 샤오미 뿐만은 아니다). 작년 휴대폰 1억 800만 대를 판매하며 샤오미로부터 중국 내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빼앗아온 화웨이 Huawei도 스마트홈 제품 군 광고를 시작했다. 화웨이는 올해 GE의 가전사업 부문을 5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한 가전기업 하이얼 Haier 등과 손을 잡고 있다. 레이는 한 샤오미 홍보 행사에서 청중에게 “누구에게든 2등으로 인식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몇 년 간의 마법 같은 성장에도 불구하고, 1등은 더욱 멀어진 목표가 된 듯하다.
중국에서 탄생한 글로벌 기업들
중국은 외국 기업 제품을 저렴하게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자체 제품과 서비스를 해외에 판매하는 중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눈에 띄는 몇 개의 예외 기업을 소개한다.
레노버
2015년 매출: 667억 달러
해외 매출 비중: 73%
레노버의 글로벌 진출은 미국 소재 기업 두 곳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2005년 IBM의 PC사업 부문을 인수한 후, 2014년에는 구글로부터 모토로라 휴대폰 사업을 사들였다. 그러나 레노버 스마트폰 부문은 고전을 하고 있다. 현재 ‘세계 최대 PC 생산기업’이라는 미심쩍은 영예를 안고 있다.
화웨이
2015년 매출: 629억 달러
해외 매출 비중: 55%
화웨이는 유럽과 남미에선 사실상 모르는 사람이 없는 기업이다. 스마트폰, 무선 네트워크, 잉글랜드 축구단 아스널의 스폰서 등을 통해 거둔 성과다. 중국 선전에 본사를 둔 화웨이는 국가 안보 우려 때문에 미국에선 여전히 차단되어 있다.
파워차이나
2015년 매출: 430억 달러
해외 매출 비중: 25%
수력 댐 건설과 전력 생산을 하는 국영기업 파워차이나는 파키스탄에서 라오스에 이르는 국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업 분야에는 핵 에너지와 풍력 발전도 포함된다. 파워차이나의 서비스는 개발도상국에서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확대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메이디
2015년 매출: 222억 달러
해외 매출 비중: 36%
중국 최대 소비자 가전 제조기업인 메이디는 미국, 멕시코 등지에서 에어컨과 냉장고를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선 고품질 백색 가전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경쟁기업 중 한 곳인 하이얼은 최근 GE의 가전 사업 부문 인수에 합의했다.
WH그룹
2015년 매출: 212억 달러
해외 매출 비중: 71%
중국 본토 소재 국영기업 솽후이 Shuanghui는 2013년 스미스필드 푸드 인수 후 사명을 WH그룹으로 바꾸고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현재는 미국 육류 가공업체 호멜이나 딘보다 매출이 훨씬 높은 글로벌 선두 돼지고기 가공업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Scott Cendrowski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