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대한민국 지도 반출 허용 여부를 놓고 10년째 판단을 미뤄온 정부가 또다시 장고 끝에 악수를 뒀다. 국가 정보 보호냐, 신산업 육성이냐는 화두 사이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법정 처리시한을 60일(공휴일 등 제외) 늘리기로 해 11월 23일까지 추가 협의하기로 한 것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제때 매듭짓지 못하고 미루는 정부의 ‘결정력 부족’이 이번 사안에서도 나타났다.
7개 정부 부처와 국가정보원은 24일 경기 수원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열린 ‘지도 국외반출협의체’ 2차 회의에서 구글 지도 반출에 관해 결론을 내지 못해 지금처럼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라면 3차 심의 때에도 결론 여부는 불투명하다.
최병남 국토지리정보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구글이 동의한다면 추후 한 번 더 심사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고 말해 자칫하면 결론이 해를 넘길 가능성도 있다. 최 원장은 “신청인(구글)과 안보나 산업에 대해 추가적인 협의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어서 결정을 다음으로 유보하기로 했다”며 “협의체 구성원들이 일관되게 국익을 논의했는데 국익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판단을 했다. 찬성을 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아니라 이해를 높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연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구글은 앞서 2007년 1월에 지도 데이터 반출을 처음으로 요청했다가 퇴짜를 맞은 뒤 지난 6월 공식적으로 국토지리정보원에 반출 신청서를 제출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북핵과 미사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구축이 현안인 상황에서 안보논리가 구글이 주장하는 경제논리보다 앞서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경제부처라도 어느 누가 총대를 메려고 하겠느냐”고 전했다. 또 다른 부처 관계자는 “협의체가 부처 과장들이 모여서 의논하는 식인데 이렇게 민감한 사안을 놓고 무슨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겠느냐”며 “미국정부의 요청이 잇따른 상황에서 쉽게 결정할 수 있겠느냐”고 털어놓았다.
2014년 6월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돼 정부는 국토교통부 장관의 주도하에 미래창조과학부·외교부·통일부·국방부·행정자치부·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국정원장이 지도 국외반출 협의체를 구성하도록 했지만 2년이 지난 올 6월에서야 1차 회의를 열었다. 또한 법에는 장관급 협의체로 명시했음에도 시행령에서는 ‘4급 공무원 이상’으로 격하해 이날 회의도 과장급들이 참석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국방부·국정원 등을 설득하고 절충할 경제부처들이 대부분 몸을 사렸다”며 “국무조정실은 경제적 득실을 냉철히 따져보자는 입장이었지만 거드는 부처가 별로 없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서버를 국내에 두지 않고 법인세도 거의 내지 않으면서 지도 반출만 허용해달라는 구글 입장이 공감대를 얻기 힘들었다고 정부 소식통들은 전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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