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계열사는 회사채 시장에서 빅이슈어(big issuer)로 통한다. 주력 호텔롯데를 비롯해 5개 계열사의 신용등급이 초우량등급인 ‘AA+’다. ‘AA-’ 이상 우량기업만도 11곳에 이른다. 롯데 계열사는 우량한 신용도를 앞세워 지난 2014년과 2015년 각각 4조7,800억원, 4조7,51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찍어냈다. 회사채 시장 양극화로 우량채 가뭄 속에서 롯데 회사채는 ‘귀하신 몸’ 대접을 받았다.
검찰이 올 상반기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호텔롯데가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선의 중요한 열쇠였던 기업공개(IPO)를 지난 6월13일 무기한 연기하면서 롯데 회사채는 수직 추락했다. IPO 무산 이후 2개월 동안 롯데카드·캐피탈 등 금융 계열사를 제외하면 롯데 계열사들은 공모와 사모를 불문하고 회사채 발행길이 막혀버렸다. 회사채 발행 때 검찰 수사 내용을 ‘중요한 경영정보’로 기재해야 하지만 피의자 입장에서 구체적인 정보를 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5조원을 조달하기로 한 호텔롯데의 IPO가 무산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돈줄이 막힌 롯데그룹이 자금조달을 위해 방향을 돌린 것은 기업어음(CP)이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한국예탁결제원 자료를 전수 조사한 결과 호텔롯데가 IPO를 무기 연기한 6월13일부터 지난주까지 2개월여 동안 롯데그룹 비금융 계열사가 발행한 CP 규모는 2조3,305억원에 이른다. 만기 1년 이내의 CP는 일반공모 회사채와 달리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부담이 없다.
그러나 차입구조 단기화는 중장기적으로 재무구조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초단기물인 3개월짜리 CP를 찍어낸 롯데 계열사도 적지 않아 외부의 돌발적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롯데쇼핑(023530)이 6월에 2,000억원을 찍은 것을 필두로 7월에는 롯데쇼핑(2,500억원), 롯데정보통신(300억원), 롯데칠성(005300)(200억원), 롯데알미늄(300억원)이 가세했고 8월에는 롯데알미늄이 150억원어치를 찍었다. 이 중 롯데알미늄은 7월 1개월짜리 185억원을 찍어 급전을 조달했다. 만기도래 자금을 단기 CP로 돌려 막기 하는 셈이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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