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이 투자할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범위와 한도가 확대됐지만 정작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수년째 매매 시스템 구축을 핑계로 ETF 판매를 외면하고 있다. 여타 금융상품 대비 저렴한 수수료로 수익성이 낮은 탓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21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퇴직연금 사업자로 등록된 50개 금융사 중 현재 ETF 매매 시스템을 갖춘 곳은 미래에셋대우와 신한금융투자 단 두 곳뿐이다.
퇴직연금의 ETF 투자는 지난 2005년 12월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직후부터 회사가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B)에 한해 가능했다. 이후 금융당국의 제도 개선으로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도 2012년부터 주식형·혼합형 ETF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또 올 7월부터는 해외지수를 추종하는 합성 ETF 투자가 허용되면서 글로벌 분산투자도 가능해졌다.
이처럼 금융당국은 퇴직연금의 ETF 투자 제한을 꾸준히 완화하고 있지만 정작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ETF 매매 시스템 구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시스템 구축을 외면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투자비용 대비 거둘 수 있는 수익성이 낮은 데 있다. ETF는 액티브펀드 등 다른 금융상품에 비해 보수가 훨씬 저렴하고 별도의 판매수수료도 없어 금융사가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적다.
또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DB형 비중이 크다 보니 ETF 투자에 대한 고객 수요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변명한다. 올 1·4분기 기준 퇴직연금시장에서 DB형 적립금의 비중은 72%다. 하지만 최근 퇴직연금시장에서 DC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상품 라인업 확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실제 올 1·4분기 DB형 적립금은 전 분기 대비 1조5,203억원이 감소한 반면 DC형은 1조1,243억원 늘었고 개인형 IRP도 4,901억원 증가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저비용으로 분산투자 효과를 낼 수 있는 ETF는 미국 퇴직연금 401K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퇴직연금 투자가 활성화돼 있다”며 “국내도 퇴직연금시장의 변화로 투자상품 라인업 확대가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는 만큼 ETF 매매 시스템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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