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생각하고 연구하다 보면 어느 날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자연스럽게 융합돼 새로운 도식(scheme)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지난 9년간의 연구는 제게 그러한 시간이었습니다.”
타원형 편미분 방정식 연구에 있어 변분법적 방법론의 개발을 통한 문제해결로 세계 정상이라고 평가 받는 변재형 KAIST 수리과학부 교수는 지난 30년간을 수학에 몸담았지만 “여전히 수학이 아름다워서 연구를 한다”며 “좋은 수학자가 되려면 따라 하기를 싫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사람처럼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했던 만큼만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박사 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연구성과를 내놓은 지난 1996년부터 남들과는 다른 생각으로 새로운 방법론을 개척했다. 일본 도쿄대 수리과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때도 최초의 수학논문 두 편에서 오래된 난제를 독창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수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2년 연구에서는 최초로 임계진동수(critical frequency)를 가진 정재파(standing waves·입사파와 반사파의 위상에서 나타나는 전압·전류의 극값) 연구로 새로운 현상을 규명해 100회 이상 인용되기도 했다.
변 교수가 수학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그는 “수학 참고서에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보는데 어려운 줄 모르고 나도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수학을 이야기할 때 유난히 자주 언급한 단어는 ‘엄밀성(조그만 빈틈이나 잘못이라도 용납하지 아니할 만큼 엄격하고 세밀한 성질)’이다. 그는 “복잡한 것을 이해하고 이를 이용하기 위해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가 수학”이라며 “나사의 톱니가 맞아 떨어져서 정교한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만족감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유난히 천재들이 많다는 수학계에 발을 들였지만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순위를 매기면 누구나 열등감을 느낄 수 있다.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누군가가 잘했을 때 ‘그 사람은 이걸 잘하는구나’ 하고 내가 맡은 바를 하다 보면 열등감
을 겪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집적해의 구성을 위해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던 데도 열등감을 갖지 않고 묵묵히 스스로 길을 걷는 성향이 도움이 됐다.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것이 노력한다고 반드시 되는 게 아니라서 끝없는 싸움이었다”며 “허점이 없고 오류 없는 수학 논리를 만들기 위해 집을 지었다 허물고 다시 짓는 것을 반복했지만 확신을 가지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이 연구결과가 응용돼 산업현장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는 미리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창의적인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수학을 앞서 시대를 살다간 수학자들이 남긴 유산 때문에 더욱 쉽게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만큼 스스로도 후대 수학자들이 조금 더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받은 것을 돌려주자는 생각이다. 그는 후배 수학자들에게도 “좋은 수학자가 되려면 무조건 다른 길이 아니라 다르면서도 보다 효과적인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를 위해서는 “따라 하기를 싫어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