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중국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 한국법인에 대해 역외탈세 혐의를 잡고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문제로 한중이 갈등을 빚고 있는 시점에 미국 정부로부터 북한 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화웨이에 대해 국내 과세당국의 전격 세무조사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추이에 관심이 쏠린다.
25일 국세청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 국제조사국은 지난주부터 서울 중구에 있는 화웨이 한국법인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조사국은 국제거래 과정에서 탈세 혐의가 짙고 탈세 과정이 복잡한 사건을 주로 조사하는 부서다.
화웨이 한국법인은 임직원이 약 150명인 규모로 주로 국내 이동통신사에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교적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에 대해 국제거래조사국이 조사에 나서면서 본사와의 거래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국세청 관계자는 “역외탈세라면 보통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탈세하는 경우를 생각하지만 외국계 기업의 한국법인도 해외 모회사에 과도하게 많은 이익을 보내는 경우 역외탈세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화웨이가 중국 본사와 거래하는 과정에서 재화나 서비스 가격을 수출할 때는 실제 거래가격보다 낮게 책정하고 수입할 때는 높게 정하는 이전가격 행위가 있었는지 중점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한국과 중국 세무당국이 지난해 맺은 이전가격 사전합의문(APA, Advance Pricing Arrangement)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이 화웨이 한국법인 세무조사에 나서자 화웨이의 이전가격 규모가 상당한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전가격 사전합의문이란 정상가격 결정방법 및 그 범위에 대해 양 국가의 과세당국이 사전 합의하는 제도다. 한국과 중국은 APA를 신청한 기업이 국제거래에서 양국이 정한 가격기준을 충족할 경우 이전가격에 대한 세무조사를 면제해주고 있다. 중국 과세당국도 지난 2013년 중국에 진출한 한국 중견기업을 전방위로 세무조사해 이전가격이 과도하다는 점을 근거로 세금을 추징한 바 있다.
중국의 삼성전자로 불리는 화웨이는 중국 내 스마트폰 판매 호조에 힘입어 상반기 매출이 전년보다 40%나 증가한 41조7,000억원에 이른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시장에서 8%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삼성과 애플에 이어 3위에 올라 있다. 특히 화웨이 설립자인 런정페이 최고경영자(CEO)가 중국 인민해방군 통신장교 출신으로 중국 군부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비상장법인이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12%에 달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재무상황 등이 가려져 있다. 특히 화웨이의 매출이 늘수록 각국 정부 및 다국적기업과의 마찰이 심화하고 있어 이번 세무조사의 배경에 관심이 모인다. 화웨이는 지난달 미국 정부로부터 대북 거래 의혹이 제기돼 지난 5년간의 수출내역 자료 제출을 요구받고 조사를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삼성전자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가 삼성으로부터 8,050만위안(약 137억원) 규모의 맞소송을 당했다.
캘빈 딩 화웨이코리아 대표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모든 것은 일상적이고 정상적”이라며 “(탈세 혐의 조사 보도가 나왔다는 점에 대해) 나도 알고 있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다른 화웨이 측 관계자는 “현재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것은 맞지만 기업이 5년마다 통상적으로 받는 정기 세무조사일 뿐”이라며 “우리 회사는 법인세를 축소 신고하거나 위법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역외탈세 조사설을 부인했다.
/민병권기자 세종=임세원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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