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이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은 중장기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증시는 지난달 23일 영국 국민투표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지만 영국과 EU의 신용등급이 강등되고 안전자산 쏠림으로 세계 금융시장에서 돈맥경화 현상이 심해지는 등 펀더멘털 문제가 부각되면서 여진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런 가운데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공조체제 강화를 외치지만 엇갈린 통화정책으로 시장에 혼란을 낳고 있다.
30일(현지시간) 유럽 주요국 증시는 일제히 상승 마감했다. 이날 브렉시트의 진원지인 영국 런던 주식시장에서 FTSE100지수는 전거래일보다 2.27% 오른 6,504.33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국민투표로 브렉시트가 결정된 지난달 24일 이후 5.96% 상승한 것이다. 블룸버그는 영국중앙은행(BOE)이 예고한 경기부양책이 증시가 오르는 데 호재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이날 마크 카니 BOE 총재는 기자회견을 통해 “브렉시트 불확실성이 한동안 고조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라며 “여름에 BOE가 통화정책 완화를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카니 총재는 “통화정책이 브렉시트가 가져올 대규모 부정적인 충격을 완전히 상쇄할 수는 없다”며 우려를 덧붙였다.
시장은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지만 브렉시트 후폭풍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오히려 영국의 EU 탈퇴 여파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펀더멘털 악화를 불러오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날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EU의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춘다고 발표했다. S&P는 성명에서 “EU의 기존 신용등급은 28개 회원국이 모두 유럽연합에 남아 있다는 전제 하에 책정된 것”이라며 “브렉시트로 금융 충격을 받은 EU의 장기자본계획이 상당히 불확실해졌다”고 우려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S&P의 EU 신용등급 강등조치가 브렉시트로 유럽이 마주할 경제적 부담을 반영한 상징적 조치라고 분석했다. S&P는 지난달 27일 영국 신용등급도 AAA에서 AA로 두 단계 낮췄으며 피치 역시 영국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낮췄다.
브렉시트로 인한 불안이 가시지 않으면서 안전자산에만 돈이 몰리는 것도 문제다. 1일 런던 외환시장에서 일본 엔화 가치는 달러당 102.72엔을 기록했다. 영국 국민투표 이후 100엔 초반대로 급락한 뒤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도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1일 금 현물가격은 온스당 1,332.01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약 5.5% 상승한 것이다. 블룸버그는 “브렉시트로 글로벌 금융시장 자금의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며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 인하와 통화완화 정책으로 돈을 푼 효과가 반감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브렉시트로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자금경색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가장 큰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는 지역은 신흥국이다. 김용 세계은행(WB) 총재는 1일 인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브렉시트 이후 금·엔·달러 등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개발도상국들이 자본을 조달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브렉시트 이후 통화정책이 상반되는 것도 시장의 혼란을 가속화하고 있다. 30일 멕시코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0.5% 올린 4.25%로 결정했다. 브렉시트로 페소 가치가 급락하자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반면 대만중앙은행은 이날 기준금리를 12.5bp 낮춘 1.375%로 결정했다. 대만중앙은행은 브렉시트로 자국 수출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며 시장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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