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 시리즈에서는 빠짐없이 자율주행 자동차가 등장한다. 수백 명에게 둘러싸여 공격받는 일촉즉발의 순간에 주인공이 시계의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어디선가 ‘본드카’가 스스로 틈새를 뚫고 달려와 주인공 앞에 나타난다. 주인공은 그 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진다. 이처럼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던 무인차 시대의 개막이 눈앞에 다가왔다.
지난 3월 미국 IT 전문매체 ‘테크인사이더(Tech Insider)’는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기능을 시험하기 위해 뉴욕시에서 촬영한 주행 비디오를 공개했다. 비디오에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기자가 자동차에 전적으로 운전을 맡기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영상이 담겨 있다. 자동차는 스스로 차가 많은 도로를 유연하게 주행한다. 터널을 통과하고 양옆에 트럭들이 지나가도 안전하게 차선을 유지하며, 때로는 차선을 변경하면서 목적지까지 주행한다. 목적지에 도착한 기자는 놀란 눈으로 테슬라 오토파일럿의 안전성에 극찬을 쏟아낸다. 이 영상을 본다면 그동안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자율주행 자동차가 머지않은 현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선박이나 오토바이 등에도 자율주행 기술이 점차 적용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센서 등의 기술 발달로 우리가 운전하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점차 ‘무인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 국방부는 승무원 없이 항해할 수 있는 군함 ‘씨헌터(Sea Hunter)’를 공개했다. 씨헌터는 약 40미터 길이의 세계 최대 규모 무인 군함이다. 미국 국방부 산하의 국방고등연구소(DARPA)가 개발한 이 군함은 최대 1만 8,500㎞까지 항해할 수 있으며, 잠수함 등을 탐지하고 공격하는 데 주로 사용될 계획이다. DARPA는 씨헌터가 선박들과 충돌하지 않고 자율주행을 하도록 향후 2년간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테스트할 계획이다.
자율주행이란 이동체에 설치된 각종 센서, GPS, 카메라 등으로 주행에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분석해 이동체 스스로 운전자의 조작 없이 목적지까지 주행하는 것을 뜻한다. 자동차 자율주행의 핵심기술로는 차선 이탈 경보 시스템인 LDWS(Lane Departure Warning System), 차선을 유지하게 지원하는 차선 유지 시스템인 LKAS(Lane Keeping Assist System), 차량 간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HAD(Highway Driving Assist) 기술, 장애물을 탐지해주는 경보 시스템인 BSD(Blind Spot Detection), 자율주행을 지원하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ASCC(Advanced Smart Cruise Control), 그리고 장애물이 있을 때 긴급 제동이 걸리는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인 AEB(Autonomous Emergency Braking System) 등이 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ISA)에서 정의한 자동차의 자동화 레벨은 크게 4단계로 구분된다. 첫 번째 단계는 AEB와 선행 차량과의 차간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달리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을 이용한 부분적 자율주행 기술이다. 이 기술은 이미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차에도 탑재되기 시작했다. 두 번째 단계는 1단계의 기능에 더해 핸들 조작까지 일부 자동화되는 단계다. 고속도로 같은 제한된 조건에서의 자율주행이 이 단계에 해당한다. 세 번째 단계는 사실상 운전자의 조작이 거의 필요 없는 ‘핸즈프리(Hands Free)’ 단계다. 그러나 긴급 상황에서의 핸들과 브레이크 조작은 운전자가 수행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아이즈프리(Eyes Free)’ 단계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운전자의 조작 없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완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안전에 대한 모든 책임도 자동차의 몫이다. 이 단계에서는 운전석도 운전자도 불필요하다.
글로벌 컨설팅 전문업체 맥킨지는 오는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에서 자율주행 자동차 보급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2035년에는 세계적으로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가 약 743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또 세계 3대 시장(북미·서유럽·아시아)에서의 자율주행차 보급 규모는 2020년 8,000대에서 2035년 9,540만 대 수준을 기록하며 연평균 85%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자동차 운행률(전체 시간 중 실제 운행시간)은 5~10%에 불과하다. 구글은 자율주행차 보급으로 이 수치가 75%까지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 출근할 때 타고 나간 차가 스스로 집에 돌아와 자녀의 등·하교나 다른 가족의 볼일을 도울 수 있다. 미국 텍사스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차량의 10%만 무인차로 바뀌어도 연간 370억 달러(약 43조 원)가 절약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뉴욕시에 무인 택시가 도입되면 현재 1마일당 4~6달러(4,680~7,000원)인 택시 요금이 10분의 1 수준인 1마일당 40센트(468원)까지 내려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무인차 시대는 부동산 시장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된다. 주차장의 필요성이 줄어들어 대다수의 시내 주차장 부지들이 재개발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경우 도시 면적의 3분의 1가량이 주차장이다. 영국에선 무인차가 보급되면 런던 면적의 16%가 재개발된다는 예측도 나왔다. 또한, 장거리 출퇴근이 가능해 시 외곽에 주거하는 사람이 늘면서 도심과 외곽의 부동산 가치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인 기대와는 다르게 무인차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무인차로 쉽게 바꿔 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사람에게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취미나 즐거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운전하는 즐거움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울러 안전과 윤리적인 이유로 인해 쉽게 우리 생활에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만약 10명을 태운 자율주행 버스 앞에 갑자기 사람이 뛰어들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차가 급정거를 하면 뛰어든 사람이 죽고,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길가에 있던 3명의 보행자가 죽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건물에 부딪쳐 버스에 탄 승객이 죽는다면 자율주행차는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이런 윤리적 문제는 앞으로도 중요한 논쟁거리가 될 전망이다.
사람이 운전대를 내려놓는 무인시대의 개막은 교통과 운송 산업뿐만 아니라 유통, 제조업, 에너지, 부동산 등 모든 산업 분야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전망된다. 명절에 자율주행하는 자동차를 타고 영화를 보고 와인을 먹으면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시대를 한껏 기다려 본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명절 풍속이 사라지기 전에 그 시대가 도래하지 않을까?
안병익 씨온 대표는…
국내 위치기반 기술의 대표주자다. 한국지리정보 소프트웨어 협회 이사, 한국공간정보학회 상임이사, 한국LBS산업협의회 이사를 역임했다. 지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포인트아이 대표이사를 지냈고, 지난 2010년 위치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 씨온을 창업해 현재 운영 중이다. 건국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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