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등을 기반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기계(1차), 전기(2차), 디지털(3차)의 발명과 보급을 계기로 이뤄진 과거 세 차례의 산업혁명과는 어떻게 다른 변화의 물결을 인류에게 가져올까. 하원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초빙연구원이 제4차 산업혁명의 의미와 파급효과에 대해 상세하게 살펴봤다.
18세기의 제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이라는 압도적인 기계의 등장으로 인간의 생활양식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이후 19세기 제2차 산업혁명은 전기와 자동차의 보급으로 인류에게 대량생산력과 편리한 이동력을 안겨주었다. 20세기에 펼쳐진 제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출현으로 자동화와 인간의 지적노동력을 증강시켜 자신의 세계관을 바꾸고 경제 및 사회체제의 전환을 가속화시켰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인류가 목격하게 될 제4차 산업혁명의 정의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공지능(AI)과 만물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 등으로 인간의 육체노동, 이동력, 지적노동의 본질을 바꾸는 한편 이에 따른 경제·사회 시스템 혁신의 총체로 정의할 수 있다.
‘다포스 포럼’을 창립한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제4차 산업혁명은 과학기술과 디지털화로 모든 것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라고 전제한다. 그는 동시에 “물리적 시스템·전자적 시스템·생물적 시스템이 대융합한 인류 역사 최대의 혁명이 되어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4차 산업혁명은 최강의 소프트웨어와 최강의 하드웨어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최대의 성능과 최적의 시스템을 창출하는 디지털 유기체 혁명이다.
구글은 지난 5월18일 시작된 구글 개발자 컨퍼런스 ‘구글 I/O 2016’에서 AI를 탑재한 대화형 음성비서 ‘어시스턴트’, 가정용 디지털 비서 ‘구글 홈’, AI 기반 채팅앱 ‘알로’를 발표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모바일 중심 세계에서 AI 중심 세계로 이행한다”고 강조했다.
구글은 2012년 인간의 뇌신경 회로망을 모방하여 기계에 학습시키는 딥러닝 기술로 고양이 개념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어린 아기도 단번에 알아보는 고양이를 컴퓨터가 이해하기까지는 무려 50년이 걸렸다. 이로써 AI 컴퓨터 SW는 개인들의 얼굴, 사물의 개념을 자동적으로 학습할 수 있게 되었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인공지능에 의하여 컴퓨터가 사람과 같이 스스로 학습하고 사물을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을 1705년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에 비견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할 것이다.
앞으로 AI가 화상이나 동화상 또는 현실세계에서 감지되는 수천 혹은 수만 가지의 일반적인 물체를 인식(Generic Object Recognition)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안정돼 있던 거대 기업과 비즈니스 모델은 순식간에 쇠락하거나 불과 수년 만에 초거대 신생기업을 탄생시키는 초(超)파괴적인 혁신(Bigbang Innovation)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전망이다.
제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인지화’
AI는 인간이 지능을 구사하고 있는 것을 컴퓨터로 실현하는 모방기술이다.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AlphaGo)는 인간의 정보처리 시스템을 모델화한 딥러닝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인간의 뇌는 뉴런(신경세포)과 뉴런 간을 연결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시냅스로 구성되어 있다. 딥러닝은 바로 이러한 뉴런과 시냅스로 이루어진 뉴럴 네트워크를 모델화한 AI 기술이다.
딥러닝을 탑재한 컴퓨터는 인간의 조건, 고양이와 같은 특정 사물의 조건을 일일이 프로그램하지 않아도 된다. 대량의 화상 등 데이터를 컴퓨터에 노출시키면, 그 데이터를 통하여 인간 또는 사물의 조건이라는 법칙을 컴퓨터 자신이 획득하게 된다.
딥러닝 기술의 응용범위는 무한정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 카메라에 그것을 탑재시켰다고 가정하자. 알파고가 프로 기사들의 3000만개 기보를 터득한 것처럼, AI카메라는 수만 명의 전문 사진가들의 노하우를 공부할 수 있다. 동시에 사진의 촬영기록이 축적될수록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통하여 카메라 주인이 선호하는 대상 인식, 명암과 구도를 갖추게 된다. 마치 살아 있는 디지털 생물처럼 주인의 기호를 맞추고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
이는 극히 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앞으로 기호적으로 표현된 개념을 현실세계의 관측 데이터와 일치시키는 AI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게 된다. ‘사과’ 혹은 ‘붉고 달콤한 사과’를 기호적으로 표시하고 사과의 시각정보 및 미각정보와 같은 현실의 데이터와 일치시키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심벌 그라운딩(Symbol Grounding)’ 문제가 해결되면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무어의 법칙에 의해 반도체의 성능이 극적으로 개선되고 비용이 저렴해진 것처럼, AI 또한 한층 저렴해지고 극적으로 강력한 AI가 어디에나 편재하는 초메가트렌드는 피할 수 없는 신문명이다.
AI에 의한 인지화 혁명은 인간의 지적 성장 모델, 즉 인지발달모델(Cognitive Development Model)을 탑재한 로봇이 산업현장과 일상생활로 깊숙이 파고들면서 성숙될 전망이다. 이러한 로봇은 인간과 같이 자율적으로 인지능력을 발달시켜 지식을 스스로 획득하여 간다. 인간이 음식을 취하고 학습을 통하여 성장하듯, 양질의 데이터를 먹이로 자기학습을 하면서 강화된 AI 로봇 등은 인지능력, 운동능력, 언어·의미 이해능력의 향상에 따라 사회 전체를 최적화할 가능성이 한층 증대된다.
거대한 변화 불러올 ‘만물지능인터넷’
인간의 생활환경은 사람, 사물, 공간 그리고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이러한 요소들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초연결되고 초지능화되는 디지털 유기체 생태계로 이행하게 한다. 전기가 빛, 에너지, 열을 전달하여 인간세계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듯이 앞으로 모든 것을 지능적으로 연결하는 ‘만물지능인터넷’이 지구사회를 혁신시키는 기본 엔진이 된다.
1990년대 초는 인터넷과 모바일의 여명기(Innovation Trigger)였다. 불과 20년 만에 32억 명이 인터넷 인프라를 이용하고, 70억 명의 가입자가 모바일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게 될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2010년대 중반은 만물인터넷과 AI의 여명기다. 10~20년 후에는 50억 명의 인류가 초스마트 인터넷을 활용하고, 100억 명의 5G 또는 6G 가입자가 무수한 AI 모바일 디바이스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그 혜택을 누리는 지능환경 공간(Ambient Intelligence Space)에서 삶을 영위하게 된다.
제4차 산업혁명은 인간 세계의 모든 거동을 센서, 기기, 로봇 등으로 디지털화하고 글로벌 규모로 수집함과 동시에 인터넷 등을 경유하여 클라우드에 철저하게 축적한다. 클라우드에 축적된 모든 정보와 데이터는 AI로 분석되고, 분석된 결과에 바탕을 두고 인식·판단·처리를 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행성(Digital Planet)이라는 제3의 지구를 탄생시키는 형국이다. 주지하듯 인터넷 혁명 이전 인류의 삶의 원천은 물리적 행성에 한정되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류는 또 하나의 지구라고 할 수 있는 사이버 행성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만물지능인터넷을 플랫폼으로 AI 제품과 서비스를 누리는 인류는 사이버 행성과 물리적 행성의 존재와 차이를 의식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두 개의 행성 간을 들락거리는 생활을 하게 된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세계와 논리적으로 작동하는 사이버세계의 경계가 사라진 복합시스템, 즉 두 개의 시스템이 초연결된 디지털행성 거주민의 생활양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전제하여 보면 제1차·제2차 산업혁명은 물리적 행성에서 탄생하였고, 제3차 산업혁명은 사이버 행성을 무대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의 주체로서의 인류는 두 개의 행성의 정교하게 조화된 디지털 행성을 터전으로 새로운 문명을 잉태해 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미증유의 제4차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축복을 선사하는 진정한 디지털 빅뱅이 될지, 아니면 초관리사회가 되어 인간성이 말살되는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역사의 주체인 인간의 선택 여하에 달려 있다.
하원규 연구원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정보정책연구실장, IT정보센터장, 유비쿼터스 IT전략센터장 등을 거쳐 현재는 초연결통신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또 한국정보사회학회 연구이사, 한국시스템다이나믹스학회 고문도 맡고 있다. 저서로 ‘디지털 행성과 창조도시’, ‘제4차 산업혁명’ 등이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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