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과 통계청이 국가 경제의 핵심지표인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어느 기관이 맡아야 하는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GDP 등 국민계정통계를 작성하고 있는 한은이 방어하는 쪽이라면 이를 제외한 국가통계의 대부분을 작성하는 통계청은 공격하는 쪽이다. 그동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있던 양쪽의 입장은 이주열 한은 총재가 GDP 통계 개선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언급하면서 다시 불이 붙는 모양새다.
이 총재는 25일 “(디지털경제의 출현 등 환경의 변화로) GDP 통계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며 “새로운 지표 개발을 통해 한계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최근 발간된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특집기사를 인용해 학원에 가지 않고 유튜브를 통해 무료강좌를 들으면 경제 전반의 효용성은 높아지지만 GDP는 오히려 감소하는 사례를 들었다. GDP 통계가 경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최근 GDP 전망이 새로 발표될 때마다 관심이 매우 높은데 GDP 0.1~0.2%포인트의 차이가 과연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GDP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은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 더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의 발언이 나온 직후 유경준 통계청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선진국처럼 우리도 현재 GDP가 담아내지 못하는 영역까지 담아내는 ‘비욘드(beyond) GDP’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한은의 GDP 개선계획을 환영했다.
유 청장은 나아가 GDP 통계를 통계청이 직접 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GDP 등 국민계정은 한은이, 국민계정 작성 관련 대부분의 기초통계는 통계청이 작성하는 이중구조”라며 “더구나 통계청이 작성하는 지역내총생산(GRDP)과 한은의 GDP 괴리가 커 통계 작성 창구 일원화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유 청장은 주요20개국(G20) 중 GDP를 중앙은행이 산출하는 국가는 한국과 벨기에 두 곳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은에서는 공식적인 반응은 자제하면서도 반대 입장을 명백하게 밝혔다. 한은의 한 핵심관계자는 “GDP 통계는 한은이 세계 최고 수준의 종합성과 속보성을 이미 인정받았다”며 “특별한 문제가 없는데 소관기관을 바꾸자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늘 이 총재의 발언도 GDP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높으니 개선 방안을 검토해보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또 G20 국가에서 GDP 통계를 중앙은행이 담당하는 나라는 한국과 벨기에 뿐이라는 통계청의 주장도 반박했다. 한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벨기에의 경우 오히려 통계청에서 통계청과 중앙은행으로 구성된 국민계정위원회에서 GDP를 작성하도록 바꿨다”며 “미국의 경우 통계청은 센서스 통계, GDP는 상무부 산하인 경제분석기관(BEA)에서 작성하는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GDP 통계는 기관들이 분리해 산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종=김정곤기자 김상훈기자 mckid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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