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독일 해운사 하파그로이드 주도의 제3 해운동맹 ‘디(THE) 얼라이언스’가 공식 출범하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결과를 함부로 예측할 수 없었다. 한진해운은 해운사의 규모를 가늠하는 선복량에서 현대상선에 앞섰고 현대상선은 한진해운보다 재무상태가 양호했기 때문에 두 회사 모두 가능성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발표된 명단에는 결국 한진해운의 이름만 있었다. 승부의 키는 선복량도, 재무구조도 아닌 바로 유럽-아시아-미주를 잇는 동서항로 점유율이었다.
해운 전문조사매체인 알파라이너의 최신 자료를 보면 한진해운은 아시아-미주 항로에서 점유율 6.8%, 아시아와 구주·대서양을 항해하는 유럽항로는 점유율 3.6%를 차지했다. ‘디 얼라이언스’를 구성하는 6개 해운사(한진해운·하파그로이드·K-라인·MOL·NYK·양밍) 가운데 미주 항로 점유율은 가장 높고 유럽항로는 하파그로이드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현대상선의 미주항로 점유율은 4.0%, 유럽항로는 3.0%다.
아시아와 미주·유럽 등 세계 최대 경제권역을 아우르는 동서항로에서의 점유율은 해운동맹 참여의 주요 변수라고 해운업계는 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남북항로와 같은 기타 항로는 각 선사가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 세계 거대 해운동맹에 가입한 해운사들의 공조는 주로 동서항로 중심으로 이뤄지는 터라 이 항로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느냐가 디 얼라이언스 참여를 결정지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한진해운이 국내 최대 규모의 해운사라는 점도 해운동맹 가입을 거들어준 한 요인이다. 지난해 기준 한진해운의 선복량은 세계 8위(61만2,233TEU·1TEU는 6m 컨테이너 1개)로 전 세계 75여개 정기 항로에서 연간 1억3백만톤 이상의 화물을 실어나른다. 디 얼라이언스 소속 해운사 중 2위로 하파그로이드(92만8,421TEU) 다음이다.
현재 전 세계 해운사들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운동맹 결성에 목매고 있다. 5년 혹은 10년 단위의 해운동맹 계약을 맺고 항로 공유, 회원사 간 환적 등을 통해 영업 경쟁력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려는 목적이다. 특히 기존 4개 해운동맹(2M·CKYHE·G6·오션3)이 3개(2M·오션·디)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각각 CKYHE 소속이었던 한진해운과 G6 회원사였던 현대상선은 디 얼라이언스 가입이 절실하다. 양사의 채권단과 구조조정 당국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장기적으로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조건으로 해운동맹 가입을 내걸고 있다.
물론 디 얼라이언스에서 일단 탈락한 현대상선에 기회가 없지는 않다. 현대상선은 이르면 오는 18일께 해외 선주들을 초청해 30% 수준의 용선료 인하협상 담판을 짓는다. 여기에 채무재조정을 통해 부채비율을 200%까지 떨어뜨리게 되면 정부가 1만3,000TEU급 초대형 선박 발주를 재무부담 없이 지원하는 프로그램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용선료 인하와 초대형 선박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경쟁력을 높인다면 글로벌 해운동맹에 가입할 여지는 충분히 남아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디 얼라이언스는 오는 9월까지 추가로 회원사를 받을 예정이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구조조정에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면 디 얼라이언스뿐 아니라 2M이나 오션에 참여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며 “디 얼라이언스 탈락으로 현대상선의 운명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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