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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진료 시대 서막이 열리다

Illustration by MIKE MCQUADE




마침내 우리 몸 안에 숨어 있는 건강과 장수의 비밀을 알아내고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행운의 시대(Lucky Years)>라는 책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오늘날 건강검진을 받으려면 한참 전에 미리 예약을 한 뒤 검진 날 병원을 방문, 일상적인 검사들을 통해 혈압과 체중 등 데이터를 확인해야 한다. 진료 전에 준비할 점은 아마도 의사에게 물어볼 질문을 정리하거나, 검사에 대한 긴장감을 줄이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검진을 마치고 며칠 뒤면 병원 관계자가 전화로 검사 결과를 알려준다. 모든 수치가 ‘정상’일 경우에는 종종 전화조차 오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에는 데이터를 개인의 상황에 맞게 적용,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데이터를 얻으러 병원에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데이터를 가지고 방문하는 식이다. 필자가 예상하는 미래의 검진 과정은 이렇다. 검진자가 진료 일주일 전 손가락에서 채취한 피 한 방울을 바이오 칩에 담아 병원으로 전송하면, 병원에서 이를 분석한다. 스마트폰이나 시계, 팔찌 형태 등의 웨어러블 휴대 기기에는 다양한 건강 관련 정보를 측정할 수 있는 갖가지 기술이 탑재될 것이다. 자신의 심박수를 측정하고 사운드 클라우드 sound cloud로 전송해 생활습관이 유사한 같은 연령대 사람들과 비교해보는 것은 물론, 심전도 정보를 담당 의사에게 보낼 수도 있다. 망막 스캔을 통해 고혈압이나 당뇨, 암 등 추후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상 징후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특정 상황에 대입될 수도 있다. 전화를 끊고 화가 난 상태일 때 혈압의 변화, 운동 후의 맥박 수치, 스트레스의 지표가 되는 심박변이도(heart-rate variability)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임산부의 경우 이 기술을 통해 산전 검사 절차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임산부가 태아의 건강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담당 산부인과 의사에게 데이터를 보내 확인 받는 것이 가능해진다. 태아의 염색체 검사를 위해 침습적인 양수천자검사(amniocentesis)나 융모막 융모 생검(chorionic villus sampling)을 거칠 필요도 없어진다. 혈액 몇 방울만으로도 태아와 임산부 스스로에 대한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임산부의 혈액으로 태아의 유전적 결함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산전 검사는 이전에는 진단할 수 없었던 암도 발견할 수 있다 지금도 이 검사는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는 보다 덜 침습적인 태아 검사 방법을 모색하던 과학자들이 우연히 발견한 기술로, 의학계에서 종종 발생하는 ‘세렌디피티 serendipity’ (*역주: 뜻밖의 발견)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혁신 덕분에 의사들은 진료 과정에서 데이터 수집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대신 환자가 사전에 제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개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아플 때 병원을 내원한다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병원까지 운전해 가서 전염 가능성이 있는 콧물을 훌쩍이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한다. 실제로 일부 신생기업들은 신청하면 바로 사내 의사가 왕진하는 자택 의료 서비스를 근로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구식의 이런 왕진 방식은 앞으로 상당 부분 가상현실로 대체될 것이다. 급성장하는 원격의료(telemedicine) 방식으로, 병원을 방문하거나 응급실에 입원하지 않고도 의사나 간호사의 진찰을 받을 수 있다. 일부 경우에는 상담, 약 처방, 후속치료 안내 같은 의사의 실시간 영상진료도 24시간 가능하다. 일부 소도시에선 멀리 떨어진 대학병원 의사와 얘기하면서 ‘활력 징후(vital sign)’를 체크할 수 있는 데스크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을 제대로 적용하면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의사들이 환자가 제공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선호할지에 대한 논쟁이 이미 진행 중이라는 걸 필자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보는 결국 실수를 줄이는 데 기여한다. 정오에 진료실에서 측정한 혈압은 수치 하나에 불과하다. 3개월 동안 잠자리에 들기 전에, 혹은 이른 아침 와인을 마시면서 쉬는 시간에 혈압을 측정했다고 생각해 보라. 데이터가 많아지면 오차 범위도 줄어든다. 의사가 혈압을 한 번만 측정할 경우, 하루 중 혈압이 가장 높은 순간을 놓칠 수 있다. 데이터는 측정점이 하나일 때보단 그래프일 때 결과가 더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데이터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야 할 필요는 없다. 기본적인 정도로도 충분하다.

데이터가 의료부문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엄청난 양의 새로운 의료 지식 및 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심장병 등 한때 불치병이었던 질병을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하고, 면역 체계를 이용해 암이 사라지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혈당, 수면의 질, 심박수, 혈압, 스트레스 정도, 이동거리, 기분 등 생물학적 기능의 주요 특징들뿐 아니라, 우울증에서 치매에 이르기까지 여러 질환의 위험도를 정기적으로 계속 추적하는 컴퓨터 응용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지구의 건강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21세기에 사는 사람은 이전 어떤 세대보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현재를 ‘행운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생명을 구하는 데이터 축적

데이터를 가지고 병원에 가는 것은 이 새로운 시대의 일면일 뿐이다. 또 다른 주요 특징은 바로 모든 데이터-개인식별 정보는 제외한다-가 중앙 집중형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돼 유사한 특성을 지닌 타인과 비교할 수 있는 익명의 프로필을 생성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정보를 기반으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을 알아낼 수 있다. 기계적 문제 진단을 위해 자동차를 컴퓨터에 연결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자신의 생물학적 특성을 다양한 인간 경험에 대한 데이터베이스에 대입해 편두통을 피하기 위해 먹어야 하는(또는 먹지 말아야 하는) 음식에 대해 알아보고, 혈당 균형을 맞추고, 기존 방식의 다이어트 없이 체중을 줄일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또 수면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몇 시에 카페인 섭취를 중단해야 하는지, 부작용 없이 특정 약품의 장점을 취할 수 있는지, 야외 운동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시간이 언제인지, 새벽 3시 10분에 계속 잠이 깨는 이유와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심박수 안정에 도움이 되는 노래는 무엇인지, 스트레스 정도가 최고조에 달해 산책 같은 스트레스 해소 활동이 언제 필요한지, 염증의 정도에 대해 얼마나 걱정해야 하는지 등도 알 수 있다. 데이터 축적 덕분에 연관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린 시절 축구를 했고 30세까지 흡연했던 36세의 여성이라면, 유사한 활동을 했던 다른 이들과 자신의 건강 프로필을 비교해 볼 수 있다. 건강 프로필에는 DNA 정보뿐 아니라, 다양한 측정 방식을 통해 감지되는 체내 활동도 포함된다. 하루에도 변동이 심한 기본 호르몬 정보에서, 일정한 패턴을 따르기 때문에 특정 질환의 리스크가 높거나 특정 치료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할 수 있는 혈액 내 단백질 정보까지 측정할 수 있다.

단백질을 연구하는 ‘단백체학(proteomics)’ 은 필자가 진행하는 몇몇 연구의 핵심적인 부분이며, 급격히 확장되고 있는 새로운 학문 분야다. 단백질이 어떻게 신체 언어를 구성하고, 결과적으로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단백체학을 이용해 세포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

이를 통해 효과적인 장애와 질병의 방지 및 치료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정적인 DNA와 달리 단백질은 매우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체내에서 일어나는 활동에 따라 분 단위로 변화를 보일 정도다. DNA 염기서열 분석으론 방금 술을 한 잔 마셨는지,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마지막으로 근육을 움직여 운동한 게 언제인지, 지난밤 잠은 잘 잤는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반면 체내 단백질은 이러한 사실들을 알려준다. 몸을 대신해서 다른 방법으론 알 수 없는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 필자의 연구는 단백체학을 통해 몸의 상태를 살펴보고 측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한 발짝 떨어져서 큰 그림을 보는 것이다. 반면 강력하고 많은 것을 알려주는 DNA는 이런 정보까진 담고 있지 않다.

스티븐 J. 엘리지 Stephen J. Elledge는 하버드 의과대학의 유전학 교수이자 보스턴 소재 브리검앤드 위민스 병원(Brigham and Women’ s Hospital) 의사이다. 엘리지는 연구를 통해 다양한 인구 집단의 질병 패턴을 추적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그의 연구는 청년과 노인 간 차이점이나 세계 지역별 인구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궁극적으로 도움이 된다.

최근 개발한 한 검사 방법은 바이러스들과 이에 대한 신체의 면역 반응들이 암과 같은 만성 질환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알아내는 데 사용되고 있다. 버스캔 VirScan이라고 하는 이 검사 방법은 피 한 방울로 거의 모든 바이러스에 대한 감염 이력을 알아낼 수 있다. 지난해 사이언스 Science지에 처음 소개됐으며, 현재는 생물 206종에 대한 바이러스 1,000종 이상을 식별할 수 있다.

이는 흔한 감기에서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까지 인간에게 감염되는 모든 바이러스종(virome)을 포함하는 수준이다. 검사는 침입자에 저항하는 신체의 방어기제 항체(antibodies)를 감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항체는 면역 체계가 바이러스 등 세균과 싸우기 위해 만드는 특수 단백질이다. 바이러스에 노출되고, 면역 반응을 보이면 해당 바이러스에 노출됐다는 ’기록‘이 항체에 남게 된다.

버스캔을 응용한 검사 결과는 놀라울 것으로 예견된다. 질병에 대한 노출을 기록함으로써 모든 종류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각에선 이 기술을 전자 현미경 발명과 견줄 만 하다고 평가한다. 미시적 수준으로 배율을 높여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주장이다.

이 글의 필자 아구스는 미국에서 기본적인 전자의무기록 (EMR) 사용이 급격히 증가해 연구 기회가 전례 없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버스캔 검사의 한 예로는 과거 및 현재의 질병 패턴 이력을 구성, 보유한 항체의 종류에 따라 특정 질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것이 있다. 오랫동안 바이러스는 심장병, 천식, 자가면역질환(autoimmune diseases) 등 만성 질환의 원인으로 인식됐다. 자가면역질환은 항체가 신체 세포를 외부 침입자로 착각해 공격하게 만드는 질병이다.

물론 여전히 연관성을 알 수 없는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 독감에 걸렸다가 낫는 것이 추후 제1형 당뇨병이나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 진단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질병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진 바이러스나 항체는 아직까지 없으며, 이 부분의 연구도 여전히 매우 까다롭다.

의심이 가는 바이러스를 하나하나 골라내 개별 검사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버스캔과 같은 검사 방법을 사용하면 큰 그림을 보고 빅데이터를 활용, 특정 바이러스 감염과 향후 발병 위험성과의 상관관계를 밝혀낼 수 있다. 이 기술을 통해 사람마다 다르게 작용하는 암에 대한 의문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보유한 항체의 종류와 항체가 생긴 시기가 치료에 대한 반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병 패턴에 대한 데이터 마이닝 data mining (*역주: 대규모 데이터를 토대로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는 일)이 항상 체액이나 침습적 검사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관찰을 통해 복잡한 인체 생물학에서 연결점을 찾는 경우도 많다.

일례로, 2014년 인공감미료가 신체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는 것이 발견됐다. 인공감미료는 미생물균유전체(microbiome)라고 불리는 미생물들의 활동을 방해해 신진대사와 혈당 균형에 영향을 미친다. 미생물균유전체 연구 도중 발견된 사실이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했다면 이미 수년 전 다이어트 탄산음료 섭취와 당뇨병 발병 위험 증가의 상관관계를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구매하고 섭취하는지(인공감미료를 사용하는 식료품이 상당하다), 그리고 건강 프로필이 어떤지(인슐린 저항성 증상과 당뇨병이 많다)만 알아도 이렇게 엄청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변곡점

‘행운의 시대’는 앞으로 수천 년 동안 인류에 운명과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새 시대를 누리기 위해 염두에 둬야 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개인과 사회 전체가 역사적 기로에 놓여 있다는 인식이다. 사고방식과 행동을 바꿔야만 의학계의 혁명과도 같은 변화가 제공하는 대단한 기회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전 인텔 Intel CEO이자 과거 필자의 중요한 멘토였던 앤디 그로브 Andy Grove는 기술 발전의 변곡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변곡점이란 시간에 따라 진행되는 진보 곡선이 변화하는 중요한 순간이며, 과거 기술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필요한 신기술이 이용 가능해지는 시점이다. 변화에 적응하고 신기술을 활용하는 개인(이나 기업)은 크게 성공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 개념은 재계에서 종종 사용되는데, 의료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시간과 의학의 진보를 나타내는 곡선 그래프 기울기가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 변화에 맞춰 우리 모두 사고방식과 행동을 조절해 행운의 시대가 질병 및 조기사망 방지에 기여하는 혜택을 누려야 한다. 행운의 시대에선 바로 의학에서 나타나는 이 변곡점과 현재 진행형인 혁명에 제대로 대응하는 방법이 중요하다. 적응하지 못할 경우 그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의학박사 데이비드 B. 아구스의 <행운의 시대: 의료 분야의 멋진 신세계에서 멋지게 사는 법(2016년 1월 5일 사이먼앤드슈스터 Simon & Schuster 출판)>에서 발췌.

데이비드 B. 아구스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케크 의과대학(Keck School of Medicine)과 비터비 공과대학(Viterbi School of Engineering)의 의공학 교수이다.

동 대학 웨스트사이드 암센터와 응용분자의학센터도 책임지고 있다. 저서로는 베스트셀러 <질병의 종말(The End of Illness)>과 <간단한 장수 비결(A Short Guide to a Long Life)>이 있다.

■ ‘디지털 의료 혁명’의 3가지 시사점



단백질의 힘

신체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단백질은 일상에서의 건강 상태와 의학적 위험에 대해 유전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세균에 담긴 정보

이제 피 한 방울로 모든 바이러스에 대한 감염 정보를 발견하고, 만성 질환과의 숨겨진 연관성도 찾아낼 수 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

데이터가 충분하면 오차가 사라진다. 각자의 신체적 특징은 독특하고 복잡하지만, ‘다수’에서 발견된 연관성은 개개인의 중요한 정보를 알려줄 수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David B. Agus,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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