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림(1916~2004)은 문학적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당대의 여신이었다. 화가 구본웅의 계모 변동숙의 이복동생이던 그는 갓 스무살에 천재 시인 이상(1910~1937)을 만났다. ‘오감도’로 주목받았으나 기생 금홍과의 결별로 방황하던 이상은 변동림에게 “우리 같이 죽을까?”라며 청혼했지만 같이 산 지 석 달 만에 일본으로 건너갔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1944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딸 셋을 둔 김환기(1913~1974)와의 재혼을 감행한 변동림은 남편의 아호(雅號) ‘향안’을 달라 했고 김향안으로 개명했다. 이름을 받은 것은 남은 생을 그 이름의 원래 주인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이었다. 실제로 남편을 여의고 딱 30년을 더 산 김향안은 뉴욕에서의 작업을 비롯한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정리했고 학문적 연구와 지원은 물론 1979년 환기재단을 설립해 1992년 환기미술관을 개관했다.
김향안 탄생 100주년을 맞아 김환기의 다양한 시대 대표작 400여점을 엄선한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전이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부산 피란시절에 그린 그림들은 정감이 가득하다. 이어 1960년대는 수채물감인 과슈를 활용해 한국의 자연을 단순화 하고 점·선·면으로 바꿔버리는 과도기였다. 뉴욕으로 막 건너간 1963~64년에는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그림일기를 꼬박꼬박 그렸고 이를 ‘향안에게’라 적은 스케치북에 남겼다. 김환기는 아내가 멀리 있든 옆에 있든 한결같이 자신의 구상과 실험, 작업에 관한 얘기들을 함께 나눴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완성한, 반복적으로 찍은 점 주변에 일일이 테두리를 친 점화(點畵) 시리즈는 한국미술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지난 4일 홍콩에서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 김환기의 점화 ‘무제’가 한국 미술경매 사상 최고가인 48억6,750만원에 낙찰됐다. 2007년 박수근의 ‘빨래터’가 45억2,00만원에 팔린 뒤 8년간 지켰던 최고의 자리를 지난해 10월 47억2,000만원에 깨뜨린 뒤 6개월 만에 스스로 기록을 갈아치우며 새 역사를 썼다.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 앞바다 돗섬에 보리가 누렇다 한다. 부산에서 향(鄕·향안을 가리킴)과 똑딱선을 타고 아버지 제사를 모시러 가던 때, 맨해튼 지하철을 타고 뻐꾸기 노래를 생각해 본다.”(김환기, 1970년6월23일)
전시는 8월14일까지. (02)391-7701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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