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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에 국내 카드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당정이 협의한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안에 따라 일부 가맹점의 수수료가 인상되는 것을 두고 정치권이 나서 "금융당국에 대책을 요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등 적극적인 가격 개입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공세에 금융당국조차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중소형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6,700억원의 수익감소가 기정사실화된 카드 업계는 손실이 더욱 커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카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치권의 노골적인 가격 개입이 되풀이된다면 카드사들이 수익악화로 폐업을 하지 않는 이상 수수료 논쟁은 선거 때마다 계속될 것 "이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용태 의원(간사)과 오신환·이운룡 의원 등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카드 수수료 인하 후속조치 간담회'를 열어 대한약사회·한국외식업중앙회·소상공인연합회·서울남서부슈퍼마켓협동조합 관계자들로부터 직접 불만사항을 청취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여야가 너나 할 것 없이 카드 수수료를 인하했다고 현수막을 내걸고 홍보했지만 현장에서는 가맹점의 수수료 부담이 되레 늘었다"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측은 참석자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보고 금융당국에 개선책을 요구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지난 14일 국회 간담회 소식이 전해지자 카드사 대표 및 임원들을 소집해 긴급회의를 열 계획이었으나 이날 다시 취소했다. 카드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막상 모여도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취소한 것으로 안다"며 "아마 조만간 수수료와 관련한 업계 실태조사나 의견수렴 등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카드 업계는 이번 일부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인상 통보가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른 당연한 절차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11월 당정이 협의한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안에 따르면 영세 가맹점(2억원 이하)은 1.5%에서 0.8%로, 중소 가맹점(2억원 초과 3억원 이하)은 2.0%에서 1.3%로 가맹점 수수료가 인하되고 연매출이 3억원에서 10억원인 일반 가맹점도 가맹점 수수료가 1.94%에서 1.63%로 인하되는 것으로 소개돼 있다. 하지만 카드사가 정해진 법정 수수료율만 받아야 하는 것은 영세·중소가맹점뿐이다.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일반·대형 가맹점은 법에서 정한 원가산정 기준을 바탕으로 가맹점별로 수수료율을 정하도록 돼 있다.
정부가 제시한 1.63%라는 수수료율은 일반 가맹점의 평균일 뿐 일반 가맹점 중에는 각 가맹점에 들어가는 비용에 따라 수수료가 내려가는 곳도, 올라가는 곳도 있는 것이다.
결국 이번에 가맹점 수수료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일각의 격앙된 주장처럼 '약속과 다른 것'이 아니라 카드 수수료 체계가 워낙 복잡해 이해 당사자 간 '오해'가 큰 탓이고 근본적으로는 끊임없이 예외를 허용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가격 개입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카드 수수료를 둘러싼 알력 다툼이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점이다.
2012년 정부가 카드 수수료 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정치권에서는 해마다 예외의 예외 조항을 신설해 카드 수수료를 인하해왔다.
이처럼 원칙 없이 단발성으로 이어진 수수료 인하 역사 때문에 지난해 말 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안이 확정된 후에도 여기저기에서 "나도 깎아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택시, 온라인 쇼핑몰 등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일부 업종들이 줄줄이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요구한 것은 물론 최근 들어서는 연매출 10억원이 넘는 대형 가맹점들도 카드사에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해달라고 하거나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하고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 수수료를 정부가 결정하는 적격비용이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인데 그나마 있는 적격비용마저 무시하고 선거철마다 카드사 가맹점 수수료가 누더기로 전락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럴 거면 그냥 공영 카드사를 만들어 수수료를 없애버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박윤선·전경석기자 sepy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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