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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상태의 쿠팡이 '로켓배송' 적법 논란 속에서도 대규모 투자에 나선 것은 '3초 결제전쟁' 시대에 직면한 e커머스 업계에 새로운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킬 수단으로 '배송 혁신'이 유일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자체 배송 시스템을 완비해 합리적 비용으로 고객 서비스를 업그레이한다면 전방위적인 '속도의 비교우위'를 구축할 수 있고 치열한 경쟁에서 '브랜드 파워'도 높일 수 있다는 속셈이다. 이케아·자라 등 기존 소매 제조 업체들이 유통 기능을 결합해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것처럼 '물류를 업은 유통' 모델이 기존 공룡들의 아성을 넘어서고 있는 점도 쿠팡의 파격에 힘을 실어준 배경으로 분석된다. 김범석 쿠팡 대표는 "글로벌 유통 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택배 서비스를 온라인 고객과 오프라인이 만나는 '접점'으로 끌어올린다면 모바일에서 시작된 유통 혁명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최초로 쿠팡이 '유통+물류' 기업 모델을 제시한 이유다. 쿠팡이 구축하기로 한 물류센터를 모두 합하면 축구장 110개 규모로 국내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기업 중 최대다. 이를 통해 전국 어디든 당일 배송이 가능할 경우 온라인 마켓의 한계였던 즉시성을 완벽히 극복하며 도약의 전기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쿠팡발 배송전쟁 유통 업계 서바이벌로 확전=굴지의 역사를 지닌 유통·물류 대기업들에 맞서 무명의 신예가 일으킨 '유통 반란'은 이미 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치열한 유통환경에서 유통 업체 전체로 경쟁의 판이 커지고 있는 것. 쿠팡이 사실상의 무료 배송(9,8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 형태로 24시간 배송(일부는 2시간)에 나서자 택배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이 최근 업계 최초로 전국 1일 배송을 선언하는 등 '당일 배송' 모델은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국내 업계의 표준이 됐다. 홈플러스가 인터넷 주문 뒤 1시간 배송을 시범 실시하고 이마트가 오후2시까지 주문할 경우 당일 배송을 모토로 내거는 등 대형마트에도 배송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 밖에 홈쇼핑·편의점·온라인몰 업계도 앞다퉈 배송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쿠팡의 도전을 시작으로 배송 및 물류전쟁이 유통 업계의 핵심으로 떠오른 셈이다.
◇ '020(Online to Offline) 서비스' 고객 반응 높아=로켓배송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다. 실제 속도와 친절로 무장한 이 서비스는 '육아용품, 중량 공산품은 쿠팡'이라는 입소문을 낳으며 '가격경쟁' 구도 이후 유통가에서 사라진 충성도를 되살리고 있다. 김 대표는 "로켓배송은 상품 판매뿐 아니라 배송까지 업체가 책임지는 최초의 '다이렉트 커머스'"라며 "단순한 배달을 넘어 온라인 고객을 오프라인과 연결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미래형 '020 플랫폼'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으로 초대형 온라인몰과의 거래액 격차는 3~4배 수준으로 줄었다. 모바일 쇼핑의 이용자 수 1위 업체는 쿠팡(779만명)으로 소셜커머스 3사가 1~3위를 장악했다.
◇대기업 뛰어넘는 고용 파워…투자 업계도 주목=쿠팡의 배송 혁신안은 양질의 고용효과로도 주목을 받는다. 쿠팡은 로켓배송 서비스 출시 1년반 만에 쿠팡맨 3,500여명을 채용했다. 오는 2017년 그 수는 1만5,000명으로 늘어난다. 쿠팡맨 대부분이 20∼30대 청년으로 평균 연봉은 4,000만원에 달한다. 고용을 줄이기 힘든 유통업의 특성을 역이용해 일자리 창출의 화수분 역할을 하며 국가경제에 기여하겠다는 복안이다.
신유통 모델에 대한 해외투자가들의 관심도 상당하다. 쿠팡을 비롯한 주요 소셜커머스는 국내 업계의 외면 속에서도 해외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사세를 키웠다. 로켓배송을 주도하는 헨리 로 수석부사장은 지난 2008년 아마존 중국 물류총괄 부사장과 2014년 알리바바 물류 부문 대표를 지낸 인물로 애플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설립 5년차인 벤처 쿠팡을 택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혁신을 정부의 유통정책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피력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판매 형태를 가장 먼저 구축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며 "금융권에 맞먹는 규제보다는 양질의 판 조성을 격려하는 정책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희원·김민정기자 heew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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