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내년도 경영계획 수립에 극심한 혼선을 빚고 있다. 다음달 확실시되던 미국 금리 인상이 최악의 파리 테러로 또다시 오리무중에 빠진데다 △중국 등 신흥국 경기침체 △원자재 가격 불안 △환율급등 같은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다수 기업이 이미 준(準)비상경영에 돌입해 사업재편 같은 구조조정을 시행하는 상황에서 돌발 대외변수까지 중첩되며 사업계획 짜기가 너무 어렵다는 호소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이에 따라 상당수 기업들의 경영계획 수립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나마 경영계획 수립이 막바지에 이른 일부 업종들은 내년 경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대대적인 신규 투자를 사실상 포기하고 유지·보수 투자 위주로 경영계획을 짜는 것으로 확인됐다.
10대 그룹 소속의 한 계열사 사장은 16일 "이달까지 내년 경영계획 초안을 마련해 그룹에 보고해야 하지만 불확실성이 커 애를 먹고 있다"며 "매출과 영업이익 같은 실적목표는 물론 투자계획·고용 등도 확정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당장 경영계획의 기본인 환율부터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은 매일 올라오는 환율 일일 보고서를 바탕으로 내년 전망치를 짜고 있지만 내년에는 예상 편차가 크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내부적으로 내년 원·달러 환율을 1,180원으로 가정하고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나 삼성계열사인 삼성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 원·달러 환율이 연말께 1,280원까지 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 기업들은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훨씬 커 환율이 급변동할 경우 적지 않은 충격을 받는다. A그룹 재무팀의 한 임원은 "환율이 5%만 변동해도 영업이익 같은 실적이 확 달라지는데 현시점에서 숫자를 확정해 윗선에 보고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불안한 대외경제 요건으로 내수경기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 답답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파리 테러에 소비침체나 환율 불안정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0대그룹인 B그룹은 내년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3.1%로 보고 경영계획을 수립하도록 계열사에 지시했다. 하지만 대표적 내수기업인 롯데는 이보다 비관적인 2% 후반대로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경영계획 수립 일정이 예년보다 뒤로 밀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의 경우 보통 11월 말까지는 경영계획 초안을 확정하고 12월 초 사장단 인사가 나면 신임 사장의 검토를 거쳐 연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보고하는 식으로 일정이 마무리되는데 초안을 짜는 것부터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일범기자 squiz@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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