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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 상실의 시대

규제에 SSM 출점 정체… 대형마트 증가율 못 미쳐

중소슈퍼도 동반 감소세

마진 악화·경쟁력 확보 못 해 소량구매 트렌드 현실서 고전

"신선식품 판로 축소 악영향… 업종 진화도 가로 막아" 우려

# '1인 가구'인 A씨가 사는 동네에는 편의점이 4개 있다. 대형마트는 세 정거장 거리다. 인근에 1인 가구가 주로 사는 오피스텔이 빼곡하지만, 슈퍼마켓이 하나도 없어 한 끼 꺼리를 장만하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편의점 도시락이나 분식집 메뉴를 택할 때가 많다"며 "곳곳에 보이던 슈퍼가 없어진데다 마트는 대용량 판매가 대부분이어서 야채 등 신선식품을 사기가 매우 애매하다"고 말했다.

'근거리 소량구매' 트렌드의 수혜처로 예상됐던 슈퍼마켓이 정부 규제에 발목을 잡혀 고전하고 있다. 규제는 대형 슈퍼마켓(SSM)에 집중되고 있지만 중소 슈퍼마켓까지 자취를 감추는 등 업종 전체가 정체 위기다. 이 때문에 소비는 물론 신선식품 판로 등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SSM은 규제가 본격화된 2012년 이후 출점 정체 상태다. SSM은 대형마트와 동일하게 출점·영업시간 규제를 받는 슈퍼마켓으로, GS슈퍼·롯데슈퍼·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이마트 에브리데이·탑마트 등이 있다. 2012년 SSM은 1,128개로 전년 대비 24.5% 증가했지만 2013년에는 1,165개로 3.3% 증가에 그쳤다. 지난해 역시 1,207개로 제자리 걸음 수준이었다. 이는 지난해 대형마트의 증가율(5.2%)에도 못 미친다. 편의성과 1인가구 트렌드에 가장 적합한 슈퍼마켓이 오히려 대형마트보다 심각한 성장 위기에 놓인 것이다.

SSM의 위기는 중소 슈퍼마켓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슈퍼마켓 숫자는 2012년 9,047개에서 2013년 8,865개로 2% 가량 줄었다. 중소 슈퍼마켓은 규제 예외 대상이지만 출점이 늘어나기는 커녕 업체 수가 줄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규제 여파 등으로 중형 슈퍼들도 몸집을 불리고 매장 면적을 키우기보다 몸을 사리게 되면서 바잉 파워가 갈수록 약해졌다"며 "근거리 소량구매 트렌드로 중형 슈퍼마켓의 약진이 예상됐지만 마진이 갈수록 악화되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현실은 정반대가 됐다"고 말했다.



슈퍼마켓의 부진은 신선식품 판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공산품이나 냉장식품 등은 온라인몰을 통해 구입하는 게 일반화됐지만 신선식품은 주된 구매통로인 슈퍼마켓이 정체될 경우 '소비 실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편의점은 '스몰 소비' 트렌드를 활용해 나홀로 성장중이지만 소형 점포가 대부분이어서 아직 신선식품은 손을 못대고 있다.

슈퍼마켓의 동면은 업종 진화도 가로막는다는 진단이다. 고급 식품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경향이 불경기속에서도 외식업계에 큰 변화를 이끌고 있지만 유기농 식품 등을 파는 프리미엄·로컬 슈퍼마켓 대중화는 외국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아직 시작되지도 못했다. 신세계의 야심작이었던 프리미엄 슈퍼마켓 'SSG푸드마켓'은 지난 3년 동안 단 3개의 매장을 내는 데 그쳤다. 초대형 하이퍼마켓(식품 위주 대형마트)은 아예 자리를 감추다시피 하는 등 업태 간 다양한 경쟁도 외면받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에 밀려 한때 고전했던 슈퍼마켓이 트렌드 변화에도 불구하고 부활 시점을 놓치며 맥을 못 추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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