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1일 사장단 인사를 내면서 "삼성전자 세트 부문의 주력사업부 리더를 교체해 제2 도약을 위한 조직 분위기 일신"이라는 설명을 가장 먼저 달았다. 그러면서 윤부근 사장과 신종균 사장은 겸직하고 있던 생활가전 및 무선사업부장 자리를 후배 경영진에게 물려주고 그간의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중장기 사업전략 구상 및 신규 먹거리 발굴에 나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윤 사장과 신 사장은 사업부장직을 맡으면서 실무까지 함께했지만 앞으로는 큰 그림을 그리게 하겠다는 뜻이다. DS부문장 겸 종합기술원장직을 담당했던 권오현 부회장도 기술원장직은 정칠희 부사장에게 넘겼다. 업무를 분담하면서 새로운 경영진을 키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박근희 삼성사회봉사단 부회장이 상담역으로 물러나면서 부회장 인사도 3명으로 줄었다.
재계에서는 이를 이재용 부회장의 '계단식 경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규모 사업재편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조직안정을 위해 주요 부문 대표를 한 번에 바꾸지 않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되 변화의 의지는 명확히 보여주는 인사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만 해도 무선사업부와 생활가전에 신임 부장을 임명해 새로운 피를 수혈하면서도 스마트폰 등의 분야에서 활로를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실제 이번 사장단 승진 인사자들도 변화와 혁신을 이끌 인물들로 구성됐다. 고동진 신임 사장은 '갤럭시' 신화를 이끈 인물이고 정칠희 사장은 LSI개발실장과 플래시개발실장·반도체연구소장 등 개발 외길을 걸어왔다. 고한승 바이오에피스 사장은 지난 2000년 종합기술원 입사 후 삼성의 바이오를 이끌어온 핵심자원이다. 한인규 신임 호텔신라 사장은 그룹 내 최고 면세유통사업 전문가다.
이 부회장의 '계단식 경영'은 오너 일가가 한 명도 승진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이 부회장은 임원진의 회장 승진 건의를 직접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이건희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사장이 패션부문장을 맡아 전면에 나서면서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에서 패션부문장으로 한 단계씩 올라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삼성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이 당분간 사업재편과 지배구조 정리작업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두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인사에서 어느 정도 속도 조절을 했고 이는 추가적인 사업재편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얘기다.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도 크지만 우선순위를 따졌을 때 파격적인 인사보다 앞서 처리할 게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조 단위 적자를 낸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대표를 유임시킨 것이나 그룹을 총괄하는 미래전략실에 큰 변화가 없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삼성은 공식 부인하고 있지만 전자계열사 간 추가 합병과 삼성전자 인적분할 같은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도 조직의 변화가 심할 때는 인사 규모가 크지 않았다"며 "이 부회장이 변화 속 안정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삼성SDS와 바이오, 의료기기사업 등이 얼마나 성과를 낼지도 관심사다. 삼성SDS는 9월 말 현재 이 부회장이 3대 주주(11.25%)로 올라 있는데 이번 인사로 사장이 처음으로 두 명이 됐다. 삼성의 신수종사업인 바이오에서는 고한승 사장을 발탁 승진시켰고 의료기기에도 삼성전자에서 세트와 부품 등을 두루 경험한 전동수 사장이 이동해 향후 사업 비전에 관심이 쏠린다. /김영필기자 susopa@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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