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노동선택권 주고 대기업 편중 금융지원·인력수급 구조 바꿔야
대기업서 중기 고유업종 넘보지 못하게 강력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수원 인근에 제조업·대학·연구소 연계 중기 산학연 밸리 추진할 것
"노동시장이 유연해져야 중소기업의 인력 미스매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국민소득 2만5,000달러 수준인 우리나라의 대졸 초임이 연봉 4,000만원인 데 반해 국민소득 5만달러가 넘는 미국은 대졸 평균 초임이 3만달러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기업이 노동선택권을 가져야만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겁니다."
취임 8개월을 맞은 박성택(58·사진)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하며 후보 시절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전환과 경직된 노동시장 개혁 등 현안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밝혔다.
박 회장은 금융지원과 인력수급 측면에서 대기업에 편중된 경제구조가 중소기업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경제는 지난 50년간 압축성장을 하면서 저축과 차관 등 사회의 금융자원을 일부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으로 대기업을 키웠습니다. 사회적 자원이 투입된 만큼 따지고 보면 국민기업이나 마찬가지지만 일부 재벌들에게 온전히 맡겼던 거죠. 그러다 보니 금융기관은 대기업 계열이라면 부실한 기업이든, 적자가 나든 상관 없이 지원했고 결국 '대마불사'가 관행으로 굳어진 겁니다."
인력수급 불균형에 대해서는 강성 노조로 인한 노동시장 경직성 문제를 지목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여년간 노동시장이 경직되면서 대기업에서는 강성 노조가 자리를 잡았고 임금이나 노사 문제가 강경 일색으로 가다 보니 대기업의 임금이나 복리후생은 끝도 없이 오른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1인당 인건비는 대기업의 60%대로 적게 느껴지지만 금액으로 보면 일본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오히려 대기업의 과잉임금 구조가 문제인 거죠. 그러다 보니 대기업에 취업하는 일부 젊은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패자(敗者)라는 인식이 굳어지면서 중소기업은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박 회장이 내놓은 해법은 기업에 노동선택권을 주자는 것이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시간제·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형태의 근로자를 선택할 수 있는 노동선택권을 기업이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이를 통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줄어들면서 대졸자가 중소기업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인력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의 인력난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실제로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은 지난 1997년 77.3%에서 2007년 64.8%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60.6%로 내려앉으며 청년들의 중소기업 기피현상이 더욱 굳어지는 형편이다. 박 회장은 사회적 자원의 공정한 배분과 함께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고유 업종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모 그룹의 경우 주식을 가진 직계가 100명이 넘는데 3대, 4대로 내려가면서 중소기업 업종까지 침투하고 있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을 맞추는 의미에서도 적어도 이 정도 업종만큼은 대기업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중기중앙회는 '중소기업경쟁력우위업종제도(가칭)' 도입을 위해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다. 박 회장은 "중기적합업종제도가 오는 2017년 만료되는 만큼 이후 정책적 대안으로 '중소기업경쟁력우위업종제도'를 도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공정한 경쟁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제도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최근 경제단체 주최로 마련된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 초청 간담회를 언급한 박 회장은 독일에서 '히든챔피언'이 나올 수 있는 비결은 공정한 경쟁환경을 만들기 위한 강력한 제도적 장치라고 주장했다. 독일의 경우 경제사법 권한을 가진 연방카르텔청이 경쟁제한법과 부정경쟁방지법 준수 여부를 관리·감독하는데 어떤 기업이든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면 매출액의 최대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한다는 것. 박 회장은 "매출액의 10%를 과징금으로 내면 상당수 기업이 파산에까지 이를 수 있어 강력한 규제 효과를 낸다"면서 "엄격한 규제를 적용해야 약자가 공정한 경쟁의 무대에 올라설 수 있고 실력대로 시장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역시 공정거래위원회가 보다 강력한 권한을 갖고 시장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남북경협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시기를 3~5년 후로 내다보는 그는 중기중앙회 차원에서 통일 전 단계와 후 단계에 각각 어떤 업종이 진출해야 하는지 탐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문제를 벗어나 순수하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남북통일은 우리나라가 크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됩니다. 21세기에 중국과 인접해 있다는 사실은 매우 큰 기회지만 북한에 막혀 있다 보니 섬나라나 마찬가지예요. 섬나라가 중국과 거래하는 것과 내륙에 붙어 육상으로 거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지요. 우리나라에 북한은 마지막으로 남겨져 있는 불모지인 만큼 통일 이후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우리나라의 백년대계가 달려 있습니다."
박 회장은 통일 이후 북한 내수시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농업 기반 기술과 장비가 부족한 만큼 퇴비나 농기계 등 농업 비즈니스 기회가 무한정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북한은 신발조차 자체 생산이 안 될 정도로 경공업 인프라가 취약한 만큼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유리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산악지역인 동쪽보다는 평야가 많고 인구가 밀집한 서쪽 지역이 제2의 개성공단으로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박 회장은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판교밸리처럼 제조업과 대학·연구소가 연계된 산학연 밸리를 구상하고 있다. 그는 "판교 밑으로는 고급 인력이 내려가지 않아 판교 남방한계선라는 말이 생겼듯이 중소제조업의 경우 고급 연구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기술개발에 애를 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수원 인근에 판교 같은 연구집적단지를 만들어 제조업 분야의 실리콘밸리로 키우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기중앙회는 현재 모 대학과 손잡고 99만㎡ 규모의 산학연 밸리를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 회장은 앞으로 중소기업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장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특히 정부 당국의 경제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범중소기업계 차원에서 힘을 모을 방침이다. 그는 "정부는 경제 성장의 부산물로 고용창출이 가능하다며 경제성장에 돈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고용 없는 성장'의 덫에 걸려 있다"며 "오히려 경제정책의 포커스를 고용에 두면 모든 게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수출이 견인했던 만큼 여기에 묶여 경제정책을 펼치지만 예전만큼 수출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수출이 덜 되더라도 내수가 튼튼하면 고용상황은 좋아질 수 있고 이는 내수산업을 떠받치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정책의 방향을 맞추면 해결책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서는 확신에 찬 희망을 내비쳤다. "여전히 우리 대한민국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나라입니다. 중국이라는 거대시장과 인접해 있고 내부적으로는 유연하면서도 속도감이 남다른 민족입니다. 21세기 경영은 속도가 무기라는 점을 상기하면 우리 민족의 속도 DNA는 다른 나라가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이지요. 매뉴얼대로만 하는 일본과는 반대지요. 하지만 우리 경제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패러다임 전환이 전제돼야 합니다.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나라, 내가 원하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나라, 중소기업에서도 희망을 만날 수 있는 나라가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He is… 기자명 |
"내가 먼저 청렴하고 깨끗해야" 대외활동 수당·법인카드 등 반납 '중통령' 박회장의 파격 행보 |
/정리=정민정기자 jminj@sed.co.kr
사진=권욱기자
대담=오철수 성장기업부장(부국장) cso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