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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관료의 시력

李在權(산업부 차장) 관료는 눈이 좋아야 한다. 관료가 한치 앞을 볼줄 아는 것과,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관료가 한번 세운 정책을 민간은 숙명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치 앞도 못보는 관료를 따른 기업들이 싸잡혀서 망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본다. 그만큼 관료의 눈은 중요하다. 불행히도, 우리 관료들의 눈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관료가 되는 문을 넘으려고 눈을 너무 혹사시킨 탓일까? 그래서 유독 안경들을 많이 썼나? 이젠 필수품이 되다시피 한 휴대폰. 이를 보면서 전문 기술관료의 시력(視力)을 정밀하게 재보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충동 때문만은 아니다. 잘못은 짚어서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태 전만 해도 휴대폰은 고작 「집 밖으로 나온 전화기」였다. 목소리를 주고 받는 것 외에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었다. 「과시용」이라는 사회심리적인 쓸모를 빼면 그랬다. 그러나 요즘 휴대폰은 다르다. 다목적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전능하다」는 말이 오히려 어울린다. 휴대폰으로 삐삐도 받는다. 인터넷으로 전해진 E-메일을 휴대폰으로 검색할 수도 있다. 어디 그 뿐인가. 보험영업사원은 실적을 올릴 때마다 휴대폰으로 데이터를 보고할 수 있다. 휴대폰이 무선데이터통신까지 가능케 한다는 뜻이다. 한때 「노트북과 휴대폰만 있으면 움직이는 사무실」이라는 말이 나왔다. 앞으로는 노트북컴퓨터마저 필요없는 세상이 온다. 세계 휴대폰시장을 주무르는 빅3는 노키아, 에릭슨과 모토롤라. 이들은 최근 「심비언」이라는 합작회사를 세웠다. 심비언은 포켓 사이즈의 「폰컴」(Phonecom) 개발이 목표다. 폰컴의 개념은 휴대폰이 컴퓨터를 흡수·통합하는 모습이다. 폰컴 프로젝트는 휴대폰이 정보통신 단말기시장을 천하통일할 것임을 미리 보여주는 전조다. 이쯤 되면 휴대폰은 정보통신기술의 「블랙홀」로 불릴 만한다. 그러나 우리 관료들은 휴대폰을 「이동 전화」(Mobile Phone)로만 봤다. 오늘 휴대폰이 열고 있는 멀티미디어, 무소불능(無所不能)의 지평을 2~3년전만 해도 보지 못했다. 지난 96년 관료들은 PCS·TRS·무선데이타통신·시티폰·삐삐 등이 「서로 다르다」고 봤다. 그래서 각 부문에서 신규 통신사업자들을 양산했다. 하지만 지금 PCS 외에는 모든 신규 통신사업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상당수 사업자들이 진입하자마자 퇴출위기를 맞고 있다. 이들이 차지할 것으로 믿었던 시장을 휴대폰이 엄청난 힘으로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게 필연이다. 문제가 있다면 관료들의 근시(近視)다. 「IMF탓」이 아니다. 머잖아 나타나게 돼 있는 기술의 수렴현상을 보지 못한 「눈뜬 장님」식 행정이 통신시장의 건전도를 해친 것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 제도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잔가지에 현혹되지 않고, 잔상과 본질을 구분할 줄 아는 시력이 진실로 우리 정보통신 관료들에게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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