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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카드장사
입력2003-03-12 00:00:00
수정
2003.03.12 00:00:00
필자는 95년8월부터 3년간 주영 한국대사관에서 참사관(재정경제관)으로 근무했었다.누구나 선진국에 갔을 때는 우선 운전면허증과 신용카드를 하루 빨리 마련해야 제대로 생활할 수 있다. 필자는 런던 시내 하이드파크 근처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대사관 옆에 있는 미드랜드뱅크 지점을 찾아가 신용카드 개설에 관해 상담했다.은행에 찾아갈 때만 해도 외교관 신분이니까 금방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미드랜드은행 직원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과거 3년간의 개인신용기록(credit record)를 가져와야만 신용을 판단하여 신용카드 발급여부를 결정할 있다는 것이었다. 고위직 외교관으로, 그것도 금융담당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 신용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은 것이다.
혹시나 지점장과 상의하면 가능할까 싶어 전화로 약속하고 뒷날 다시 면담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외교관이라고 하더라도 신용을 파악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는데 무엇을 믿고 신용카드를 발급해 줄 수 있느냐는 얘기였다. 이후 바클레이즈 등 다른 은행도 찾아갔지만 같은 이유로 한결같이 거절당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었다. 명색이 외교관인데 신용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퇴짜를 당했다는 사실이 잘 이해가 안됐고, 자존심도 적지않게 상처를 입었다.
결국 오랫동안 런던금융시장에서 활동해 신용을 축적한 모 금융회사 현지 지점장의 보증을 받고서야 신용카드를 개설할 수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는 신용불량자 양산문제로 매우 시끄럽다. 신용카드회사들이 가입자의 신용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회원확보와 수익에만 급급한 나머지 길거리 권유를 통해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발급했다.
결과는 신용카드회사의 경영위기와 신용불량자 양산이라는 경제사회문제로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신용사회를 선도해야 할 신용카드회사가 오히려 신용질서를 어지럽히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필자는 일련의 과정속에서 국민소득만 높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뼈저린 교훈을 얻게 되었다.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이 갖줘져야만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도록 사회 구석구석에서 원칙과 정도에 입각한 제도와 시스템의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배영식(신용보증기금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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