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사는 고시생 최기영(29)씨는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기 위해 데스크톱 PC를 고르면서 좁은 방 때문에 슬림형 PC를 선택했다. 하지만 김씨는 석 달 후 원래 집에 슬림형 PC를 갖다 놓고 커다란 데스크톱 PC를 새로 장만해야 했다. 동영상 강의를 저장해놓고 틈틈이 듣기에는 하드디스크 용량이 지나치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얼리 어댑터라고 자부하는 대학생 박찬희(23)씨의 책상 속에는 MP3플레이어가 무려 5대나 잠자고 있다. 이들 MP3P는 동영상 지원 등 다양한 기능을 자랑하지만 사용법이 복잡해 한두 달 사용하다 이내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박씨는 레인콤에서 출시한 ‘디즈니 MP3P’를 선택했다. 액정화면도 없는데다 기능이라고는 미키 마우스의 두 귀로 볼륨 조작이나 선곡을 하는 것이 전부지만 가볍고 편리해 주력제품으로 이용한다는 것이 박씨의 설명이다. 가볍고 얇고 짧고 작아지면서 복잡한 구조로 진화해온 다기능 복합 IT기기들. 이 같은 복잡함에 대항해 단순함으로 무장한 미니멀리즘 제품들. IT기기의 두 가지 큰 조류가 하나로 만나고 있다. ‘너무 복잡한 것은 싫고 단순한 것은 정말 재미없다’는 소비자들의 요구 때문이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경박단소(輕薄短小) 디자인으로 휴대성을 극대화하면서도 다양한 기능과 뛰어난 성능을 동시에 갖춘 IT기기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말하자면 IT기기들이 경박단소에 성능을 입힌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출시한 슬림형 데스크톱 PC는 기존 슬림형 PC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던 저장공간 문제를 해결, PC 시장에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슬림형 디지털카메라도 손에 쥐기 불편하고 사진을 찍을 때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에게 외면 당했지만 최근 디카 업계는 손떨림 방지기능을 보강하고 어두운 곳에서도 빠른 셔터 스피드를 보장할 수 있는 ‘고감도 촬영 모드’를 장착,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인텔도 이 같은 추세에 맞춰 기존 노트북 PC 이상의 성능을 발휘하면서도 사용시간을 두 배 이상 늘린 울트라모바일 PC(UMPC)용 초소형 CPU를 비롯해 얇은 두께의 전면 LCD를 채용한 ‘모바일 인터넷 기기(MID)’를 선보였다. 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IT기기의 흐름이 컨버전스냐 단순기능이냐를 두고 오랜 논쟁을 벌였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논쟁 자체의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며 “앞으로 소비자들은 작고 가볍고 얇으면서도 기능은 뒤떨어지지 않는 제품을 보다 많이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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