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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68.국제사회에서 국익을 지키는 길
입력2003-09-16 00:00:00
수정
2003.09.16 00:00:00
정문재 기자
세계의 모든 나라는 국가간 이해득실에 따른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정을 맺거나 사안에 따라 국제기구를 구성하고 이해관계를 조율한다. 이것은 국가간 분쟁을 해소하고 다양한 모색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군사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제기구들이 결성되어 있다. 그런데 여러 나라가 회원국이 되어 결성한 국제기구라 해도 회원국간에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 그것은 국제기구의 운영이 대개 회장국이거나 상임이사국 등 실질적인 집행국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장이나 상임이사 등 새로운 운영주체를 선정할 때가 되면 물밑 작업으로, 또는 공공연히 드러내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회장국이나 상임이사국이 된다는 것은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하는 일이며 자국의 이익을 지키고 확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문화산업이라는 출판도 예외가 아니다.
2001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IPA(국제출판협회) 상임이사회의가 열렸을 때다. 몇몇 상임위원들이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한국 출판계에서 외국 저작물의 무단 복제와 복사가 성행한다며 이 문제를 IPA의 주요 의제로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한국이 국제저작권협약에 가입한 국가이고 IPA 상임이사국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만일 이 문제가 IPA의 논쟁거리로 불거진다면 한국 출판계의 명예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내가 APPA(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 회장인데다가 IPA 상임이사였기에 다른 상임위원들에게 충분히 해명하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설득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는 IPA의 의제에서 빠지게 됐다.
지난 8월 하순, APPA 델리 총회에서 만나기 전 페레비센스 IPA 회장이 팩스로 물어 온 것이 있다. 2000년 개정된 한국의 저작권법 개정 내용 중에 국립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는 도서자료를 디지털 데이터 베이스화해서 공공도서관이 무료로 검색,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 사실인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적소유권 위반이 될 텐데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를 묻는 내용이었다.
나는 2000년 개정된 한국의 저작권법에 무료 이용이 명시된 것은 사실이나 금년 7월 개정된 법에서 이용 요금을 받을 수 있게 명시됐다고 설명해 주었다. 페레비센스 회장은 충분히 이해했고, 앞으로 IPA 상임이사나 다른 회원국들이 그 일을 문제 삼으면 자신이 해명해 주겠다고 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가까이 지내는 페레비센스 회장이 문제될 소지를 사전에 내게 알려 줌으로써 미리 대책을 강구하라는 고마운 뜻이었다. 이처럼 국제기구에서 회장국 또는 상임 이사국이 되면 활동 여하에 따라 국가의 명예를 지키거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중국과 일본, 대만, 인도 등 APPA 회원국들은 해마다 도서전을 개최한다. 그 중에서 중국, 일본 등의 국제 도서전은 상당히 큰 규모다. 특히 중국의 경우 세계 최대 시장으로 각광 받으면서 북경도서박람회에는 해마다 각국의 참가가 늘어나고 있다. APPA 회원국들이 국제도서전을 개최할 때면 회장인 나에게 초청장을 보내 온다. 참석하면 나의 이름과 APPA 회장 직함, 그리고 대한민국 국적을 꼭 소개한다. 나는 이 일 역시 국익에 기여하는 것이라 믿는다.
세계적인 통합기구로 유엔(UN)이 있지만 유엔에서조차 상임이사국의 의사가 일반 회원국에 비해 훨씬 큰 힘을 가진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지난해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으로 한국인 이종욱 박사가 선임되어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정부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WHO와 같이 널리 알려진 국제기구가 아니더라도 정부는 한국이 가입한 모든 국제기구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이 그 기구의 주요 인사가 되도록 밀어주는 것도 국익을 지키고 확대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정문재기자 timot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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