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오는 마지막 ‘뮤지컬 빅 4’. 지난 28일 성남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미스 사이공’에 따라 붙었던 수식어다. 빅 4 가운데 나머지 셋은 ‘캣츠’‘레미제라블’‘오페라의 유령’.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계의 살아 있는 신화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작품. 레미제라블과 미스 사이공은 그의 최대 맞수인 끌로드 미쉘 쉔버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빅 4’라는 수식어에 떠오르는 호기심 하나. ‘쓰리 테너’, ‘관현악단의 빅 3’ 등 흔히 어떤 분야 최고를 거론할 때 들먹이는 단어는 ‘쓰리’다. 그런데 뮤지컬은 왜 ‘빅4’일까. 궁금증은 미스 사이공을 보고 나면 곧바로 풀린다. 세계 4대 뮤지컬인 ‘빅 4’ 가운데 셋을 골라야 한다면 안타깝게도 ‘미스 사이공’이 고배를 마셔야 한다. 미스 사이공의 무게가 결코 떨어져서가 아니다. 흥행 성적과 무대 역사 등 양적인 수치로만 보면 89년 초연한 미스 사이공은 캣츠(81년 초연)와 레미제라블(85년 초연), 오페라의 유령(86년 초연)에 밀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의 완성도나 극적인 구조, 관객 흡인력을 따지면 미스 사이공은 단연 발군이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차이는 있다. 캣츠엔 사파리 퍼레이드와 같은 화려한 의상과 ‘추억’ 등 주옥같은 곡들이 있고 레미제라블엔 온 몸에 소름을 돋게 하는 그 유명한 바리케이드 씬이 기다리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천정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샹들리제의 충격이 귀에 친숙한 선율과 함께 어우러진다. 미스 사이공은 함락 직전 사이공 시내를 탈출하는 그 유명한 헬리콥터 씬이 관객을 압도한다. 야외 무대에서 진짜 헬리콥터를 등장시킨 이 장면은 미스 사이공의 트레이드 마크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공연장에선 영상으로 처리됐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미군 병사 ‘크리스’와 베트남 여인 ‘킴’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미스 사이공의 최대 관심은 단연 여주인공 ‘킴’과 남자 조연 ‘엔지니어’다. 뮤지컬 여배우들에게 꼭 하고 싶은 역할을 얘기하라면 킴이 일순위다. 뮤지컬 빅4 가운데 여주인공 역할이 이처럼 두드러진 작품은 없다. 레아 살롱가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던 킴 역엔 김보경과 김아선이 낙점 받았는데 그 중 첫 공연 테이프를 끊은 김보경은 코맹맹이 목소리의 명랑 소녀 이미지를 말끔히 씻고 ‘뮤지컬 디바’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연습 중 뇌출혈로 쓰러진 김성기 대신 엔지니어 역을 맡은 류창우는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사랑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는 익살맞은 ‘포주’역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한국어에 서툴러 우려됐던 교포 출신 마이클 리(크리스 역)의 발음은 극적인 긴장감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수준에서 충분히 빛을 발했다. ‘아이다’의 주역이었던 이건명과 ‘지킬 앤 하이드’에서 루시역을 맡았던 김선영은 녹슬지 않은 연기력과 노래 솜씨를 과시한다. 영상 처리된 헬리콥터 장면이 서운하긴 하지만 베트남과 방콕 홍등가의 화려한 무대 연출이 아쉬움을 달래준다. 뮤지컬엔 왜 ‘빅4’라는 수식어가 필요한지 증명해주는 작품. 8월20일까지 성남아트센터, 9월1~10월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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