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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덕분에 화려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21일 타계한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지난 99년 현대차를 떠나며 32년간 정열을 쏟아부었던 현대차와 큰형인 정주영 명예회장에 대해 이렇게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재계에서는 정 명예회장의 별세에 대해 옛 현대가문의 1세대 경영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포니 정’세상을 뜨다=‘포니 정’으로 불렸던 정 명예회장의 인생은 한국 자동차산업의 역사와 함께 했다. 67년 현대자동차를 만들어 사장으로 취임한 정 명예회장은 이후 뚝심과 탁월한 경영수완으로 ‘포니ㆍ엑셀’ 신화를 만들며 한국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하나씩 만들어갔다. 현대차 설립 당시 정 명예회장이 합작선인 포드자동차를 설득한 일화는 지금도 신화로 전해지고 있을 정도다. 현대차는 정 명예회장의 주도 아래 68년 1호차인 ‘코티나’를 생산한 데 이어 74년에는 최초의 국산 고유 모델인 ‘포니’를 개발했다. 이어 76년에는 포니를 본격적으로 생산하면서 에콰도르에 수출해 국산차의 첫 수출이라는 기록과 함께 포니 신화를 일궈냈다. 정 명예회장은 85년 지금도 인기를 끌고 있는 ‘쏘나타’를 탄생시킨 데 이어 86년에는 엑셀을 미국에 수출, 첫해 20만여대를 팔며 포니에 이은 엑셀 신화를 만들었다.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자동차산업의 세계화를 이룩하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현대차 기사 바뀌다=30여년간 현대차를 키워온 정 명예회장과 현대차와 결별은 98년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서 촉발됐다. 98년 말 현대그룹은 기아차 인수 이후 자동차 부문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면서 이사회 의장에 정 명예회장을 임명하고 정몽구 당시 현대 회장에게 현대차 회장을 맡도록 하는 등 경영권을 정리했다. 이 와중에 99년 3월2일 정주영 당시 현대 명예회장이 정 명예회장을 불러 경영권을 정몽구 회장에게 넘겨줄 것을 얘기했고 정 명예회장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현대차와 완전히 결별하게 됐다. 이후 2000년 터져나온 ‘왕자의 난’도 그에게는 적지않은 시련으로 다가왔다. 정 명예회장은 2000년 11월 출간한 회고록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에서 “큰 형님의 속뜻을 진작 헤아리지 못한 내가 송구스러웠다”며 “이제 포니에서 내렸지만 기사가 바뀌어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오류와 잘못을 고친다면 현대차는 더욱 훌륭한 준마로 커나갈 것”이라고 밝혀 현대차의 발전을 간절히 희망했다. ◇현대가 1세대 경영 막내려=정 명예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현대 회장 등이 별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가 집안의 어른 역할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대차ㆍ현대중공업ㆍ현대그룹 등 범 현대가 관계자들은 정 명예회장의 별세를 맞아 현대가의 ‘큰 어른’을 잃었다며 깊은 애도를 나타냈다. 현대그룹과 KCC간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정 명예회장은 한때 중재역으로 부각될 만큼 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 명예회장의 별세로 ‘영(永)’자 항렬의 현대가 창업 1세대 가운데 절반이 세상을 떠나게 됐다. 막내 정세영 KCC명예회장을 제외하고는 일찍부터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따라서 옛 현대가의 계열사별로 ‘몽ㆍ선’자 항렬의 2ㆍ3세 후계구도가 사실상 마무리 수순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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